종교개혁 거인의 인간적 면모를 들여다보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마르틴 루터

입력 2019-02-08 11:24 수정 2019-02-08 13:10
카타리나 폰 보라와 마르틴 루터의 결혼식을 표현한 루카스 크라나흐의 작품. 국민일보 DB

마르틴 루터/린들 로퍼 지음/박규태 옮김/복있는사람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 하면 떠오르는 몇 개의 이미지가 있다. 하나는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 성(城)교회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못으로 박는 모습이다. 다음은 독일 보름스 제국회의에서 결연하게 “주님, 내가 여기 섰습니다. 나를 도우소서”라고 진술하는 장면이다. 실제 확인은 안 되지만, 그랬다고 전해지면서 정설처럼 굳어진 이미지다.

여기에 개신교 교리의 뼈대가 된 칭의론, ‘독일어 성경’ 번역, ‘오직 성경으로’ 정신, 성만찬 중 그리스도가 빵과 포도주 안에 실제로 임재한다는 공재설을 더해보자. 그러면 종교개혁의 비장한 영웅이자 개신교의 위대한 아버지 마르틴 루터의 모습이 얼추 완성된다.

하지만 그의 실제 삶도 그렇게 위대하고 비장했을까.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이었기에 혼돈의 시대를 그렇게 살아낼 수 있었을까. 린들 로퍼 영국 옥스퍼드대 역사학 흠정교수가 답을 찾아 나섰다. 로퍼 교수는 루터가 주고받은 각종 편지 모음집과 탁상담화 등 원전 자료들을 붙들고 10여년간 연구했다.


그는 서론에서 “나는 루터 내면의 풍경을 탐구하여 몸과 마음을 분리하여 보는 우리 현대 이전 시대에 형성된 육체와 영혼에 관한 그의 생각을 잘 이해하고 싶다”며 “특히 루터의 여러 모순에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종교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해 루터라는 인물의 내면을 탐구하고, 그가 시대와 어떻게 조응했는지를 생생하게 되살려내려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주석과 참고문헌까지 790쪽에 달하는 책에서 만나는 루터의 모습은 포장되기 전, 날것의 느낌이 강하다. ‘까다로운 영웅’이었다는 저자의 말대로 매끈하고 잘 다듬어진 모습보다 뾰족하게 날이 서 있고 안팎으로 끊임없이 좌충우돌하는 인간을 보게 된다.

어린 시절 그를 억압했던 아버지와의 불화, 평생 삶의 원동력이 됐던 분노, 한때 친구였더라도 마음이 뒤틀리면 가차 없이 돌아서서 퍼붓던 증오, 외설적이고 적나라한 수사에서 보이는 그만의 유머 등 약점이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정서적 밑바탕이 있었기에 당대 로마가톨릭교회에 반기를 들고 끊임없이 싸우면서 살았던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여성으론 처음으로 옥스퍼드대 역사학 흠정교수가 된 로퍼 교수는 ‘사회사와 문화사, 페미니즘 운동으로 형성된 종교사학자’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는 여성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던 루터가 결혼과 성생활에 있어 사회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주장을 펼쳐왔다며 “이 명백한 역설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야말로 내가 도저히 거부할 수 없었던 도전”이라고 밝히고 있다. 카타리나 폰 보라와의 결혼생활부터 여성과 성, 인간의 육체에 대한 루터의 생각과 여기에 담겨있는 그의 신학을 상세히 되살려냈다.

이렇듯 16세기 독일 사회를 치열하게 살아온 루터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칭의론 등 루터 신학의 결정체들이 새롭게 보인다. 그가 외쳤던 신앙의 자유와 양심, 의롭다 하심으로 받은 구원과 은혜의 감격이란 곧 그가 피와 땀을 흘리며 온몸으로 살아낸 시대의 산물임을 깨닫게 된다.

[관련기사]

[관련기사]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