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이는 원칙주의자이며, 해야 될 일이 있으면 밤 새서 일하는 스타일이었다. 평생을 그렇게 해 왔다.”
고(故) 윤한덕(51)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과 5년간 수련의 생활을 함께 한 허탁(55) 전남대 의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7일 “고인과는 응급의료 관련 평생을 같이 일한 동지”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허 교수는 전남대 의대 82학번으로 고인의 4년 선배다. 허 교수는 “고인과는 1994년 전남대에서 레지던트 4년과 전임의(fellow) 1년 등 5년 동안 응급의학과 수련의 과정을 같이 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내가 기억하기론 그는 매일 밤낮없이 환자를 돌봤고 당시 다른 의료분야 보다 열악한 응급실 문제에 대해 수없이 울분을 토로했다”면서 “응급실에서 몇 명의 환자를 잘 치료하기보다 응급환자를 제대로 치료하는 선진국형 체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데 서로 공감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2010년 국내 응급의료 전용헬기(닥터헬기) 도입과 지역 응급의료 협진사업 관련 국가연구용역과제를 수행하면서 당시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을 맡고 있던 고인과 같이 일했다고 기억했다.
허 교수에 따르면 고인은 완벽주의자였다. 중앙응급의료센터 직원이 해온 자료와 서류를 밤새 수정하고 새로운 계획을 직접 기획했다. 허 교수는 “그는 원칙주의자이자 이상주의자였다. 현실과 타협하라는 제안을 거부하고 일생을 선명하게 살아왔다”면서 “내가 현실보다 한 발짝 정도 앞서 가라고 말했지만 그는 세 발짝 앞을 그리며 정책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런 열정 때문에 고인이 자기 집에 머무른 시간은 1주일에 일요일 저녁 몇 시간뿐이었다고 한다. 허 교수는 “일도 중요하지만 본인 건강도 챙기고 가족도 좀 생각하라고 선배로서 수없이 충고했지만, 잘 듣지 않았다”고 했다.
고인은 설 연휴인 지난 4일 오후 6시쯤 센터내 자신의 사무실에서 앉은 채로 숨진 채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심장마비로 결론났다. 연휴 기간에 ‘응급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퇴근도 미룬채 근무를 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의 책상 위에는 설 연휴 재난대비, 외상센터 개선방안, 그리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중앙응급의료센터 발전 방향에 관한 서류가 놓여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한달에 한번씩 만나거나 통화하며 국내 응급의료 현실에 대한 고민을 허 교수에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와의 마지막 통화는 2주 전이었다.
허 교수는 “당시 10여명의 사상자를 낸 강릉펜션 일산화탄소 중독사고 이후 응급의료 대응 체계를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에 대해 얘기 나눴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고인은 국내 외상센터 체계 개선에 대한 고심도 깊었던 걸로 알려졌다.
대한응급의학회는 이날 애도 성명을 발표하고 “청천벽력 같은 비보에 모든 회원은 애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고인을 떠나보내고 크나큰 슬픔에 잠겨있을 유족과 생전에 함께 했던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모든 선생님들과 고통을 함께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또 “고인의 응급의료에 대한 열정과 헌신을 잊지 않을 것이며 그 숭고한 뜻을 잇고 받들어 우리나라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최상의 응급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임을 다짐한다”고 덧붙였다.
대한의사협회도 성명을 내고 “응급의료계 별이 졌다”며 애도를 표시했다. 최대집 의협 회장등 집행부는 이날 국립중앙의료원을 찾아 조문했다.
최 회장은 “가족과 주말 내내 연락이 되지 않아도 마치 일상인 것처럼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욱 가슴 아프다. 이는 평소 윤 센터장이 얼마나 환자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진료하고 일에 몰두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한편 가천대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1명도 지난달 31일 당직근무를 한 뒤 다음날인 이달 1일(설 연휴 직전) 숨진채 발견돼 안타까움을 더했다.
의협은 “두 명의 회원 모두 설 연휴 기간 동안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노력하다 숨진 것으로, 의사 개인의 문제가 아닌 의료체계 근본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의협은 의사 진료 시간 제한 등 준법 진료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국내 의사의 평균 진료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많고, 이는 회원국 평균(연간 일인당 7.4회)의 2.3배(연간 일인당 17회)에 해당한다.
종합병원, 대학병원급의 의료기관을 특히 선호하는 국민 정서로 인해 대형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의 진료량은 더욱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의사 개개인에게 10시간 이상의 진료를 강요함으로써 국민을 위한 안전 진료가 위태로워진다는 게 의료계 입장이다.
전공의들의 경우 근로자이자 수련을 받는 교육생이라는 이중적 지위의 특수성으로 인해 1주일에 최대 88시간까지 근무하고 있으나 처우는 매우 열악한 실정이다.
최 회장은 “대다수 병원 의사들은 근로 기준법상 규정된 근로시간이 아닌, 사실상의 휴식시간 없이 24시간 대기에 주 7일 근무를 하고 있는 실정으로, 극히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 처해 있다”라며 “의사가 건강해야 환자가 건강하다. 안전한 진료환경에서 최선의 진료가 나올 수 있다. 다시는 이러한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적정한 근무환경 조성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