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이 ‘골든아워’에 기록한 윤한덕 “비꼬던 말에 진정성”

입력 2019-02-07 18:00 수정 2019-02-07 18:00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왼쪽)과 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빈소. 뉴시스

이국종 아주대병원 외상외과 교수(권역외상센터장)는 지난해 10월 출간한 저서 ‘골든아워’에서 ‘윤한덕’이라는 제목의 목차를 썼다. 지난 4일 병원 집무실에서 숨진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에 대한 이야기였다. 국내 응급의료계에서 함께 헌신한 윤 센터장을 이 교수는 어떻게 봤을까. 그는 “출세에 무심한 채 응급의료 업무만을 보던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윤 센터장이 6년간 진두지휘해 온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는 2002년에 설립됐다. 국내 응급의료 인력과 시설을 총괄하기 위해 만들어진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이었다. 처음 합류할 당시 윤 센터장의 직책은 응급의료기획팀장. 쉴 틈 없이 업무가 쏟아지는 곳에서 윤 센터장은 매일 전쟁을 치러냈다.

설립 초기 상황은 매우 열악했다. 이 교수는 “그(윤 센터장)가 보건복지부 내에서 응급의료만 전담해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정부 내에서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며 “그런데도 윤한덕은 중앙응급의료센터를 묵묵히 이끌었다”고 회상했다. 이 교수에게 윤 센터장은 ‘자신의 일이 응급의료 정책의 최후 보루라는 자의식이 뚜렷하던’ 인물이다. ‘수많은 장애 요소에도 평정심을 유지하던’ 응급의료 전문가이기도 했다.

골든아워에는 이 교수에게 인상 깊었던 윤 센터장과의 일화도 등장한다. 이 교수가 윤 센터장을 찾아간 2008년 겨울, 윤 센터장은 대뜸 냉소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그는 이 교수에게 “지금 이국종 선생이 이렇게 밖에 나와 있는 동안 아주대병원에 중증외상환자가 갑자기 오면 누가 수술합니까”라고 물었다. 이 교수는 그 질문을 이렇게 해석했다.

“그가 나를 보자마자 던진 질문의 함의는 선명했다. ‘외상 외과를 한다는 놈이 밖에 나와 있다는 것은 환자를 팽개쳐놓고 와 있다는 말 아니냐. 그게 아니면 환자는 보지도 않으면서 무슨 정책 사업이라도 하나 뜯어먹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였다. 그는 내내 나를 조목조목 비꼬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에게서 진정성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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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외상센터 관련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고 나는 그 시기에 그를 종종 보았다”고 했다. 2009년 가을, 전남대 의과대학에서 윤 센터장을 마주한 기억은 이 교수에게 선명히 남아있다. 외상센터 관련 심포지엄에서 발표자로 나선 윤 센터장은 일정이 끝나자 의과대 강의실을 찾았다고 한다. 그는 뒤쫓아 온 이 교수에게 자신의 대학 시절을 덤덤히 들려줬다. 이 교수는 그때 본 윤 센터장이 “순수한 열의를 가진 젊은 의학도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2016년 세종시에서 열린 전국 중증외상센터 사업 관련 회의에서 만났던 기억은 암울하다. 이 교수와 윤 센터장은 이날 병원 경영자들의 모습에 좌절했다. 중증외상환자 전용 장비와 의료진 확충을 요구하던 대형 병원들이 보건복지부 주도의 ‘중증외상센터 설치 사업’에 먼저 선정되고 나자, 말을 바꿔 일반 진료에도 전담 의료진과 장비 운용을 가능하게 해 달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 교수는 회의장을 빠져나가던 윤 센터장의 나지막한 말을 책에 그대로 옮겼다. “(이 사업도) 곧 끝나겠구먼…. 차라리 끝나는 게 좋겠어.”

윤 센터장은 수많은 밤을 지새운 자신의 사무실에서 마지막 숨을 거뒀다. 응급의료계의 장비, 시설, 인력 부족 등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고군분투해왔지만 정작 그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과로 때문에 누적된 피로인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사인을 알아내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부검을 실시하고 있다.

윤 센터장이 숨진 날은 설 전날이었다. 설 당일 고향에 가기로 했던 윤 센터장이 지난 2일부터 연락두절 상태가 되자 아내가 사무실을 찾았다. 윤 센터장은 쪽잠을 자던 사무실 한쪽의 간이침대가 아닌 책상 앞 의자에 의식을 잃은 채 앉아있었다. 근무 때문에 집에 못 들어오는 날이 잦았던 터라 뒤늦게 발견됐다고 한다.

윤 센터장의 장례는 국립중앙의료원장으로 진행된다. 발인 및 영결식은 10일 오전 9시 열릴 예정이다. 윤 센터장의 비보를 접한 이 교수는 한 매체와의 통화에서 “어깻죽지가 떨어져 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