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는 우리에게 재난” 윤한덕이 생전에 외쳤던 현실

입력 2019-02-07 11:17 수정 2019-02-07 11:28
윤한덕 센터장 페이스북

“긴 연휴, 응급 의료는 그것만으로도 재난이다.”

응급의료계 영웅으로 불리는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설을 하루 남겨둔 지난 4일 숨진 채 발견됐다. 긴 연휴를 재난으로 여기던 그는 그 현장을 홀로 지키다 병원 집무실에서 이른 마지막을 맞이했다.

갑작스레 전해진 윤 센터장의 비보에 의료계는 충격에 빠졌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어깻죽지가 떨어져 나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 센터장을 응급의료계의 영웅이자 버팀목이라고 표현했다.

조석주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도 “17년 전 응급의료 현실을 바꿔보겠다고 결의에 차 있던 모습이 떠오른다”고 회상했다.

윤 센터장은 동료들의 기억 속에 의사 생활 전부를 응급 의료에 헌신한 인물로 남았다. 세상을 떠나기 불과 열흘 전 페이스북에 남겼던 글도 그랬다.

그는 “보건의료단체의 반발을 피하려 119 구급대원 업무 범위를 신설해 해결하려는 건 편법이다. 면허·자격의 범위가 직장에 따라 달라진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외국에서는 다 되는 게 왜 우리나라에서는 안 된다는 것인가”라며 답답해했다.

이어 “병원이든 민간이송이든 119구급이든 환자에게 필요한 의료적 판단과 행위를 동정하고 그 이득과 위험성을 비교해 응급구조사가 의사 지시 없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규정해야 한다”며 “응급구조사의 의료 전문성을 믿지 못하겠거든 들여다보고 환류하고 교육하는 시스템을 만들던지, 지식·경험·숙련성을 검증할 수 있는 전문응급구조사제도를 만들자”고 건의했다.

마지막에는 “무엇보다 모든 논의의 중심에는 환자의 편익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센터장은 글에 달린 댓글에 직접 답하기도 했다. 반박 댓글이 달릴 때도 차분히 본인의 주장을 다시 설명했다.


윤 센터장은 흔히 ‘전쟁터’라 알려진 응급실의 고단함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2017년 9월 “10월 2일이 공휴일이 되어 연휴가 열흘이 됐다. 응급의료는 그것만으로도 재난”이라고 했다. 이틀 뒤 게시물에서는 “오늘은 몸이 세개, 머리가 두개였어야 했다. 내일은 몇개가 필요할까?”라며 급박했던 상황들을 전했었다. 응급 의료계의 현실이었다.

그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 당당한 발언도 응급의료계에 힘을 보탰다. 지난해 12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있었던 ‘중증 응급환자 사망을 줄이기 위한 응급의료체계 리폼 토론회’에서는 “이 문제가 나아질지 생각하면 참담하다”고 일갈했다.

이어 “고령화로 요양병원 증가, 응급실 환자 증가, 진료과 세분화, 근로시간 단축 등 병원 운영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시설과 장비, 인력 말고 병원별 역량에 맞는 별도 권역센터 기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증 응급환자 진료 수가를 개선하면 병원들이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라며 정부 부처의 지원을 강력히 주문하기도 했다.

응급의료 현실 개선에 힘썼던 윤 센터장이 일군 성과도 크다. 그가 2012년 센터장이 되면서 2011년 시험 운항한 닥터헬기가 본격적으로 중증응급환자 이송 등에 활용되기 시작했다.

앞서 2005년부터 6년간 응급의료 기본계획 수립에 참여했다. 또 전국 400여개 응급의료기관 대상 표준응급진료정보 수립체계로 한 해 데이터 1494만건(2016년 기준)을 제공하는 응급의료정보망(NEDIS) 구축·운영에도 앞장섰다.

윤 센터장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08년과 지난해 보건의날 행사에서 각각 국무총리와 대통령 유공 표창을 받았었다.

의료원은 1차 검안 결과 윤 센터장의 사인은 ‘급성 심정지’다. 윤 센터장이 누적된 과로로 인해 사망한 것이라는 것이 의료원 측의 판단이다. 유족들은 정확한 사인을 위해 7일 부검을 요청한 상태다.

윤 센터장의 장례는 국립중앙의료원장으로 치러진다. 영결식과 장례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