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엔 고향?… 호캉스·리조트족 몰려 “체크인에만 1시간”

입력 2019-02-07 10:19

고향에서 가족, 친척과 함께 보내는 전통적 의미의 명절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설 연휴기간 소수의 직계가족만 모여 해외나 호텔에서 휴식을 즐기는 이른바 ‘호캉스’(호텔+바캉스)족은 수년째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소속감보다 자아실현과 행복이 중요한 가치관으로 부상하고, 동등한 성 역할을 주문하는 페미니즘이 확산된 게 영향을 미쳤다고 진단했다.

직장인 강모(35)씨 부부는 지난 3~5일 3살 딸과 경기도 김포의 A호텔에 묵었다가 진을 뺐다. 강씨는 6일 “가족 단위로 온 투숙객들로 가득 찬 호텔 로비에서 체크인을 위해 1시간 가까이 머물렀다”며 “호텔 수영장은 한여름 한강둔치 수영장처럼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B호텔 관계자는 “평소 한국인 투숙객은 전체의 15% 정도지만 명절 연휴에는 3배 이상 늘어난다”며 “지난 1일부터 6일까지 이례적으로 만실을 기록했다”고 했다. 강원도 주요 리조트는 지난달 이미 설 연휴 기간 대부분 예약이 끝났을 정도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1일부터 6일까지 공항 이용객은 일평균 20만3719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설 연휴(19만377명)보다 약 7% 많았다.

연휴기간 서울과 수도권에서 레저활동을 즐긴 이들도 급격히 늘었다. 전자상거래 업체 티몬에 따르면 설 연휴 전 1주일간(1월 25∼31일) 판매된 국내 여가 상품은 전년 대비 100% 증가했다. 테마파크 상품권 판매는 지난해보다 188%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전통적 의미의 가족관계 틀과 규범이 해체되고 있는 현상 중 하나로 분석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명절에 발생하는 가사노동과 가족 친지 간 갈등을 감내한 기성세대와 달리 연휴를 실용적으로 즐기려는 젊은 세대의 가치관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1인 가구의 증가로 대변되는 가족 구조의 변화도 원인으로 꼽혔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1인 가구 수는 2017년 말 기준 561만3000가구로 2000년 대비 150% 증가했다. 구 교수는 “과도한 경쟁과 취업난, 불합리한 위계질서로 인해 생기는 스트레스로부터 도피하려는 심리가 1인 가구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며 “전통적인 가족 개념이 약해진다는 현실은 받아들이되 독거노인 문제 등 가족 해체의 부작용 해결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영 페미’(젊은 페미니스트)의 증가도 명절 트렌드 변화에 일조했다. 영 페미의 증가는 그들을 자녀로 둔 중년 세대에까지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부모가 자녀를 만나기 위해 이동하는 역귀성은 최근 2년 만에 3.3배 증가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20, 30대를 중심으로 명절기간 힘든 노동이 수반되는 가사 문화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지난해 남녀 1170명을 대상으로 명절 성차별 사례를 설문한 결과 ‘여성만 하게 되는 가사 노동’(53.3%)을 1순위로 꼽았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