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방송이 “그의 유산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김복동 할머니 별세 소식을 비중있게 전했다.
김 할머니는 지난달 28일 오후 향년 93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BBC는 3일(현지시간) “침묵을 거부한 성노예”라며 김 할머니의 삶을 들여다봤다.
이날 방송은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말을 믿고 집을 떠났다가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가 참혹한 일들을 겪어야만 했던 할머니의 일대기를 전했다. 딸만 여섯인 집안에서 넷째 딸로 태어난 김 할머니는 만 14세가 되던 1940년 위안소로 끌려갔다. “딸을 내놓지 않으면 동네에서 살지 못하게 하겠다. 군복 만드는 공장으로 가야 한다”는 말에 놀라 집을 떠났다. 이후 중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지에서 참담한 세월을 보냈다. BBC는 “10대를 갓 넘긴 어린 나이에 강제로 접대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할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고 소개했다.
BBC는 “김 할머니는 1947년 마침내 한국에 돌아왔지만 40여 년 동안 괴로워하며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김 할머니는 1992년 3월 용기를 내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피해 사실을 처음 진술했다. 같은 해 8월 제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회의, 1993년 유엔인권위원회 등에서 위안부 피해자로서는 처음으로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이후 미국과 일본, 유럽 등에서 증언을 이어갔다. 김 할머니를 만난 적 있다는 한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는 생존자였다”고 회고했다.
BBC는 김 할머니의 파급력이 대단했다고 평가했다.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 인권을 위해 혁혁한 공을 세운 것으로 봤다. BBC는 “김 할머니는 베트남 등 전쟁으로 희생 당한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했다”고 전했다. 김 할머니는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에 원고로 참여해 실상을 문서로 증언하면서 “나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지만 지금 세계 각지에서 우리처럼 전시 성폭력 피해를 입고 있는 여성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알고 있기에 그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아울러 2012년 3월 8일에는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지원하는 ‘나비기금’을 만들었다.
방송은 일본이 끝내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김 할머니가 유언으로 일본에 대한 강한 분노를 표현했다고도 전했다. 2016년 1월 김 할머니는 ‘한일 위안부 합의’ 무효를 주장하며 기자회견을 자청해 “피해자들에게는 한마디 없이 협상을 타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이처럼 허무하게 협상을 진행할 줄은 몰랐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신 사죄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아베 총리가 직접 나서서 사죄하는 게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9월에는 암 투병 중에도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요구하며 외교부 앞에 직접 나왔다. 이날 “우리가 위로금 받으려 여태 싸운 줄 아느냐, 1000억을 줘도 못 받는다”고 강조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