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꺾은 지방대 청년, 한국당 국회의원 될까?…“보수는 엘리트 좋아해”

입력 2019-02-05 05:00 수정 2019-02-05 05:00

“저는 지방공립대 출신이다. 김범수 후보는 하버드에서 공부했다. 서울대 학력이 가장 안 좋은 경력이다. 그런데 김범수 후보는 책임당원을 1명이라도 모집해봤나?”

자유한국당의 조직위원장 공개선발 오디션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지방대 출신의 20대 청년이 “당원 한 명이라도 모집해봤냐”고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며 하버드대 박사 출신을 꺾는 등 이변이 속출했다. 새로운 정치 실험이란 호평도 받았다. 하지만 본 무대가 막을 내리자 공개 오디션을 둘러싼 뒷말이 무성하다. ‘오디션 키즈’ 들의 앞날이 가시밭길에 놓일 것이란 전망 속에서 실질적인 세대교체에 이르지 못할 것이란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한국당은 지난달 10일부터 12일까지 3일간 국회의원 선거구 조직위원장 선발을 위해 15개 지역에서 공개 오디션을 실시했다. 그동안 밀실공천으로 대변되던 인적쇄신 작업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하자는 취지였다. 비대위는 조직강화특별위원회에 전권을 부여하며 힘을 실어줬다. 그 결과 연륜 있는 기성세대를 청년들이 꺾는 이변이 벌어졌다. 주중대사까지 지낸 3선의 국회의원도 패배를 맛 봤다. 이렇게 선출된 조직위원장들은 당협위원장으로 임명돼 2020년 총선에서 공천을 받는데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된다. 한국당이 이번 오디션을 통해 세대교체에 성공했다고 자평한 것도 이러한 수순을 염두에 둔 결과였다.

◆오디션에서는 실력만 봤지만…실전에선 보수정당 특유의 ‘엘리트 의식’ 팽배

하지만 오디션 키즈들이 내년 총선까지 정치 행보를 이어갈 거라고 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보수정당 특유의 엘리트 의식에 가로막혀 스스로 ‘고사’할 것이란 자조 섞인 얘기도 나온다. 당협위원장은 선거구의 최고 책임자로 보통 해당 지역구의 국회의원이 맡는다. 당협위원장들이 관리해야 할 당원들의 평균 나이대는 보통 60대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이 대다수다. 특별하지 않은 스펙, 젊은 나이가 오디션에서는 차별점이 됐지만 지역 무대에서는 한계이자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당 관계자는 “관료, 법조인, 교수 등 명망가 그룹을 지도자로서 떠받들어온 보수정당의 생리상 이들의 조직 장악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커리어가 좋지 않으면 당협위원장으로서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정치 신인에게 벅차기만 한 지역구 관리

지역 관리 경험이 전무한 것도 문제다. 정치 활동을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들은 사정이 낫지만, 처음 정치에 입문한 신인들에게는 ‘맨땅에 해딩’하는 수준과 다름없다. 인적쇄신이란 명분 아래 현역 의원을 비롯한 기존의 당협위원장들을 밀어내고 지역구에 들어온 터라 전임자로부터 인수인계를 받기도 어렵다. 실제로 이번 오디션을 통해 정치에 입문한 수도권 지역의 한 조직위원장은 현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자문을 요청하고 있지만 지역 관리가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마저도 현역 국회의원이 자리잡고 있는 지역구의 당협위원장이 된 경우 활동 보폭이 더 줄어든다. 현역 의원이 관리해온 지역에 끼어든 모양새라 지역 당원과 현역 의원의 견제를 넘어서야 하는 부담이 있다. 한국당의 한 의원은 “이번에 당협위원장이 된 사람들은 수개월 동안 고생하면서 결국 당협을 관리할 수 없다는 사실만 배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도부에 따라 공천 결과 뒤집힐 수 있어

오는 2․27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가 들어서면서 오디션 결과가 바뀌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당대회에 출마한 일부 후보들이 일부 오디션 결과에 문제가 있다며 원점 재검토를 공언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총선이 가까워지면서 해당 지역이 전략공천 지역으로 분류될 가능성도 높다. 이번 오디션 대상 지역에는 서울 강남과 영남지역 등 전통적인 한국당 강세 지역이 포함돼 있다.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지역에서 이름 없는 정치 신인들을 교체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칠 수도 있다. 한 원외 당협위원장은 “당협위원장이란 직책은 자기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자리다. 당협위원장이 힘에 부치는 것 같으면 밑에서부터 교체 여론이 일 것”이라며 “이번 오디션은 쇼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오디션 키즈들의 미래가 불투명한 가운데 한국당 안팎에서는 유능한 신인들이 정치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대위 관계자는 “그동안 한국당에 정치 신인들을 육성하는 시스템이 없었다”며 “이들이 자생력을 갖고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심우삼 기자 s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