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시인은 지난달 31일 트위터를 통해 문학과지성사를 성토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고 정지한 시집은 딱 두 권이다. 미성년자를 성폭행해 대법원에서 징역 8년형을 선고받은 A시인의 시집과 내 시집”이라면서 “그러니 난 문학과지성사에게서 징역 8년형을 선고 받은 셈이다. 나는 여전히 범죄자”라고 적었다.
문학과지성사는 2016년 10월 19일 SNS를 중심으로 박 시인에 대한 성폭력 의혹이 불거지자 이틀 뒤인 21일 사고를 냈다. 당시 사고에는 “박진성씨의 성폭력 가해 고발이 잇따르고 있음을 접했다”면서 “그의 세 번째 시집 ‘식물의 밤’을 출간한 출판사로서 피해자 분들의 고통을 가슴 아파하며 유감을 표한다. 이 사건을 조속히 조사해 사회적 정의와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 입장을 밝히고 조치하겠다”고 적혀 있다. 출판사는 이후 박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식물의 밤’에 대해 출고 정지 처분을 내렸다.
박 시인은 트위터에서 문학과지성사가 자신을 성범죄자로 낙인찍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사회적 정의와 윤리라는 주홍글씨, 비누로 닦아도 타월로 아무리 씻어도 절대로 벗겨지지 않는 주홍글씨”라면서 “죽어서도 내가 못 잊을 주홍글씨”라고 적었다.
문학과지성사측 담당자 B씨는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박 시인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시집의 출고 정지는 애초 박 시인과 출판사가 함께 합의해 내린 결정이고 이후 박 시인이 전화로 먼저 출판사과 출간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는 것이다. 즉 법원의 판결보다 양측의 합의가 우선이라는 설명이다.
B씨는 “처음 논란이 불거졌을 때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난이 출판사에 쏟아졌고 시집을 출고 정지하자는 우리측 요청에 박 시인도 흔쾌히 합의한 것”이라면서 “이후 박 시인은 2018년 3월 출판사에 먼저 전화를 걸어 출판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했다. 우리는 이를 즉각 받아들이고 곧바로 계약해지 확인서를 우편으로 보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시인은 이후 어쩐 일인지 계약해지 통보를 번복한 뒤 다시 출고 정지 처분을 풀어달라고 막무가내로 요청하고 있다”면서 “계약이 해지되면 출고 정지 또한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박 시인은 출고 정지는 얼떨떨한 상황에서 합의했을 뿐이며 이후 성폭력 혐의를 벗은 뒤 출고 정지를 풀어 달라는 자신의 요구를 출판사가 일방적으로 피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출판계약 해지 또한 먼저 제안하긴 했지만 곧바로 마음이 바뀐데다 계약해지 확인서에 자신이 날인하지 않았으니 효력이 없다는 입장이다.
박 시인은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성폭력 의혹이 불거진 직후 경황이 없던 상황에서 문학과지성사측이 어떻게 할지 황급히 물어와 출고 정지에 합의한 것”이라면서 “성폭력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이 내려지고 내가 무고의 피해자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문학과지성사측에 10여 차례 전화를 걸어 출고 정지를 풀어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후 홧김에 계약해지를 통보한 사실은 있다”면서도 “하지만 우편으로 받은 계약해지 확인서에 날인하지 않아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또 출고 정지가 풀리지 않았는데 계약해지를 해버리면 영원히 문단에서 성범죄자라는 낙인에 찍힐 것으로 생각했다”고 대답했다.
박 시인은 자신과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했다. 이 전 예술감독은 지난해 9월 극단 단원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박 시인은 “문학과지성사는 이 전 감독의 책 ‘한국 현대희곡선’을 2017년 2월 출판했고 지금도 판매하고 있다”면서 “성범죄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의 책은 왜 팔고 나 같은 무혐의자의 책은 왜 출고 정지하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문학과지성사 B씨는 이에 대해 “이 전 감독의 책은 공저이고 문학사를 정리한 것이어서 개인의 시집 출판과 엄연히 다르다”면서 “박 시인에게 보고할 필요가 없어서 이를 알리지 않았는데 이 전 감독의 책은 현재 수정중보를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 시인은 또 문학과지성사가 내걸었던 사고를 문제 삼고 있다. 이 사고를 근거로 많은 언론 매체들이 자신을 성범죄자로 낙인찍어 보도했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을 성범죄자로 몰아세웠던 언론사를 상대로 손해배상과 함께 정정 보도까지 얻었으니 이를 반영해야 하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문학과지성사 B씨는 “기존에 냈던 사고는 자문을 구한 결과 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면서 “다만 박 시인이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는 만큼 추가 사고를 낼지 등에 대한 긍정적으로 논의를 해보겠다”고 전했다.
박 시인은 설 연휴 직후부터 문학과지성사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설 계획이다. 이미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시위에 동참하겠다고 알려왔다고 한다.
문학과지성사 B씨는 “성범죄 논란이 불거진 이후 출판사 직원들 또한 박 시인으로부터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았고 또 이로 인해 신뢰를 잃은 상태”라면서 “어차피 박 시인과의 5년 계약이 올해까지인 만큼 서면으로 박 시인에게 계약해지를 공식 통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