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 결말 논란부터 대기록까지, ‘SKY 캐슬’이 남긴 것들

입력 2019-02-04 12:00
드라마 'SKY 캐슬'(JTBC) 포스터. JTBC 제공


‘SKY 캐슬’(JTBC)이 지난 1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석조저택 단지 SKY 캐슬을 배경으로 대한민국 최상위 학부모들의 입시전쟁을 그려낸 이 드라마는 가히 ‘신드롬’을 일으켰다. 극에 등장하는 입시 관련 정보들이 학부모 사이에서 회자됐고, 온라인에서는 인물을 따라 하는 패러디가 수없이 넘쳐났다. 방송이 끝나면 관련 키워드가 대형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장악했고, 다음 내용을 유추하는 네티즌들의 추측 글이 커뮤니티를 메웠다. 대본이 유출되는 사고가 있었지만, 기세가 꺾이긴커녕 궁금증은 더 증폭됐다. SKY 캐슬, 그리고 그 신드롬이 남긴 이야기들은 어떤 게 있을까.

‘도깨비’ 위에 세운 높은 성, ‘SKY 캐슬’
1.7%(닐슨코리아), 드라마의 첫 회 시청률은 낮았다. 지상파가 아닌 종편 채널임을 감안하더라도 저조한 성적표였다. 하지만 ‘입시’라는 신선한 소재와 빠른 전개, 충격적 엔딩 등을 바탕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드라마는 연일 역사를 새로 써나갔다.

드라마는 12회에서 12.3%를 기록하며 기존 ‘품위있는 그녀’(2017)가 가지고 있던 JTBC 드라마 최고 시청률인 12.1%를 뛰어넘었다. 16회에서는 무려 19.2%로 첫 회와 비교해 10배 이상이 껑충 뛰었다.

이후 비지상파 최고기록을 가진 ‘도깨비’(tvN·2016)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인지에 관심이 쏠렸다. 극은 18회에서 22.3%로 이를 넘어섰고, 최종회에서는 23.8%를 만들어내며 한동안은 깨지지 않을 대기록을 써냈다.


드라마 'SKY 캐슬'(JTBC)의 한 장면. JTBC 제공


스릴러 같은 입시극이라니…‘품위있는 막장’이란 이런 것
이유 있는 성공이었다. 극본·연출·배우 삼박자가 맞아 떨어진 수작이었다.

유현미 작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가 공감할만한 입시라는 영리한 소재를 선택해 이를 탄탄한 서사로 풀어냈다. 연출을 맡은 조현탁 감독은 지난해 11월 제작발표회에서 “자녀를 우리나라 최고의 의과대에 보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미쳐 날뛰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실제 드라마는 우리나라 입시 교육의 현상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면에 깔린 적나라한 욕망을 다채롭게 비춰내는 데 성공했다. 거기에는 세심하게 배치된 인물들이 큰 몫을 했다.

극은 네 쌍의 부부와 각 가정에 딸린 자녀들을 여럿 등장시켰다. 명문가를 만드는 건 정성이라고 믿는 ‘퍼펙트형 엄마’ 한서진(염정아), 인성이 중요하다고 믿는 이수임(이태란) 등이다.


드라마 'SKY 캐슬'(JTBC)의 한 장면. JTBC 제공

이는 부모가 가진 욕망이 어떤 방식으로 자녀들에게 흘러 들어가는지, 혹은 자녀들은 어떤 방식으로 부모의 욕망을 욕망하게 되는지를 다양하게 표현하는 동시에 몰입감을 키우는 요소가 됐다. 시청자들은 각 인물에 자신을 대입해가며 극에 더 빠져들어 갔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교육 문제를 다루는 데다 누구나 주인공들과 유사한 욕망이 있다는 점에서 뜨끔함을 느끼게 한다. 치밀하고 꼼꼼하게 구성한 극본이 빛난다”고 설명했다.

한국 드라마에서 그간 애용해왔던 자살 폭력 출생의 비밀 같은 자극적 설정도 한몫했다. 이는 극이 입시교육을 소재로 하고 있음에도 마치 스릴러처럼 긴장감을 자아내게 한 장치가 됐다. 하지만 기존 ‘막장’과는 다른 품위가 있었다. ‘막장 코드’들이 개연성 없이 극의 파괴력을 키우는 수단으로써 존재하기보다는 이야기에 깊게 배어 주제의식을 표현하기 위한 필수적 장치로서 시청자들에게 다가갔기 때문이다.

연출의 힘도 빼놓을 수 없다. 자극적 설정에 깊은 설득력을 부여한 것은 조 감독이었다. 드라마가 작가의 예술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조 감독은 뛰어난 미장센으로 무장한 시퀀스를 연신 선보였다.

그는 인물들의 떨리는 손, 미세한 눈의 떨림 등을 카메라에 섬세하게 담아냈다. 이로써 인물들의 행동에 당위성을 만들어내고, 생생한 감정을 안방에 전달했다. ‘엔딩 장인’이라는 드라마의 수식어가 보여주듯 전개를 쉽사리 예측할 수 없도록 한 영리한 장면배치는 극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여기에 염정아 윤세아 오나라 이태란 김서형 정준호 김병철 조재윤 최원영 등 중견 배우들의 호연은 물론이요, 어린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흐트러짐 없는 연기까지 합쳐지면서 드라마는 한층 빼어나 졌다.


드라마 'SKY 캐슬'(JTBC)의 한 장면. JTBC 제공


교육방송 된 SKY 캐슬, 불쌍해진 혜나
이런 수작이었기에 결말은 더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끊어지기 직전의 고무줄처럼 팽팽한 긴장감은 사라지고, 단선적으로 변한 권선징악 스토리가 극을 메웠다. 치닫는 욕망으로 가정이 파괴되고 결국 모두 불행을 맞을 거라는 시청자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파를 타면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마지막 회를 재촬영 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오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최종회는 SKY 캐슬 단지 내 아이들, 엄마들, 아빠들이 개과천선을 하는 과정이 담겼다. 강예서(김혜윤)는 고등학교를 나와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아직 이기적인 모습을 다 버린 건 아니지만, 눈빛은 선하게 변했고 이전보다 한껏 여유로워졌다. 한서진은 딸을 향한 이전의 교육관을 버리는 동시에 곽미향으로서의 삶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강준상(정준호)은 의사 가운을 벗고 지난날을 반성하며 새 출발을 알렸다.

이에 맞춰 단지 내 다른 가족들도 변화했다. 가부장제의 표상과도 같았던 로스쿨 교수 차민혁(김병철)은 아내 노승혜(윤세아)와 아이들의 가출에 항복을 선언하고, 더는 자녀들의 교육에 관여하지 않게 됐다. 이수임 네 황우주(찬희)는 자퇴를 하고 여행을 떠났다. 이 모든 파국의 근원이었던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은 감옥 안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드라마 'SKY 캐슬'(JTBC)의 한 장면. JTBC 제공


물론 후반부로 갈수록 교훈적 내용이 어느 정도 담길 것이라는 건 예상 가능한 부분이었다. 이는 프로그램 정보란에 적혀있는 소개 글을 보면 더 정확해진다.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다.

“난파선에서 구명조끼 하나 얻으려고 사생결단, 친구고 뭐고 생쥐랄을 떨었는데 쾌속정 타고 유유히 사라지는 엿 같은 자들을 향해 야유 한번 날려주고, 마지막까지 연주를 그치지 않았던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향해 기립박수를 쳐주는 어른다운 참 어른으로 성장하는 청소년, 그리고 어른들의 성장드라마.”

의문이 남는 부분은 사회의 아픔을 드러내고, 병폐를 꼬집는 방법이 굳이 이런 방법이어야 했을까에 대한 것이다. 가장 한국드라마 같지 않았던 드라마가 가장 한국드라마 같이 끝나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 유 작가의 선택이 아쉽다는 지적이 인다. 굳이 해피엔딩이 아니더라도, 시청자들은 모든 주인공이 파국을 향해 달려가던 이전의 스토리를 보면서 우리와 닮은 모습에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미 블랙코미디로서의 소임을 충분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가장 측은한 건 죽음을 맞이한 ‘흙수저’ 혜나(김보라)가 됐다. 사교육은 엄연한 시장으로, 자본의 힘이 크게 작용한다. 자본이 더 큰 자본을 만들어내는 시장 시스템 안에서, 힘이 없는 사람은 교실의 한구석 어딘가로 저 멀리 밀려나기에 십상이다.

이를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것인 마냥 극의 혜나는 SKY 캐슬 사람들의 개과천선을 위한 부차적이고, 수단적인 존재가 됐다. “어머니는 혜나의 죽음과 무관하십니까”라는 김주영의 날카로운 질문에도, ‘결국 금수저들의 성장드라마’라는 냉소 섞인 지적이 나왔던 이유다. 혜나의 죽음 이후, 남은 사람들이 더 큰 파국을 겪는 모습을 보여줄 순 없었을까, 그것이 정의를 향한 권선징악적 메시지와 더욱 더 닿아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드라마 'SKY 캐슬'(JTBC)의 한 장면. JTBC 제공


그럼에도….
신드롬은 사회적 영향을 끼친다. ‘SKY 캐슬’이 신드롬을 이어가면서, 여러 지적이 고개를 들었다. 드라마를 통해 부각된 입시 코디네이터의 존재 등이 학부모들의 과도한 교육열을 부추기고, 많은 이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었다. 극에 삽입된 자극적 요소들이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떤 현실에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SKY 캐슬’은 큰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한민국 최상위 가정의 삶으로 위장했지만, 극에 드러난 경쟁과 위선, 혐오와 배타적 시선 등이 ‘전혀 모르는 딴 세상 이야기’라고 하기엔 너무나 생생했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인기와 연일 치솟은 시청률의 연유, 극이 끝난 지금까지도 ‘SKY 캐슬’에 담긴 부조리를 지적하는 뉴스가 이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