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집유 이어 김경수 실형…되풀이된 판사 탄핵 청원에 靑 시험대

입력 2019-02-03 11:45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댓글 조작을 한 혐의를 받는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1심 재판부의 전원 사퇴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0만명 이상이 참여했다. 청와대는 2018년 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집행유예 이후 1년 만에 법관 탄핵 청원과 관련해 답변을 하게 됐다.

◇ “사법부의 막가파식 유죄 판결” 하루 만에 20만 돌파

지난달 30일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온 ‘시민의 이름으로, 김경수 지사 재판에 관련된 법원 판사 전원의 사퇴를 명령합니다’라는 청원은 3일 오전 기준 25만명에 육박하는 동의를 이끌어냈다. 청원자는 “김 지사에게 신빙성없이 오락가락하는 피의자 드루킹 김동원의 증언에만 의존한 막가파식 유죄판결을 내렸다”며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와 증거우선주의의 기본을 무시하고, 시민을 능멸하며 사법부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부정한 매우 심각한 사법쿠데타”라고 지적했다.

이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재판에 관련된 법원 판사 전원의 사퇴를 명령한다”며 “지금 당장 시민들 손으로 끌어내리기 전에 스스로 법복을 벗고 그 자리에서 물러나길 충고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성창호)는 김 지사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킹크랩(댓글 조작 프로그램) 시연회 참석’ 등 김 지사가 드루킹 일당의 댓글 조작을 알고 있었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정황증거 신빙성을 대부분 인정했다. 재판부는 또 김 지사가 드루킹 측에 댓글 조작 대가로 요구받은 일본 오사카 총영사직 대신 센다이 총영사직을 제공하려 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도 유죄로 판단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정형식을 파면하라’ 청원에 ‘사법부 독립’ 내세웠던 청와대

청와대는 지난해에도 판사 탄핵 청원에 답변을 한 적이 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풀려나자 재판장인 정형식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파면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국민의 돈인 국민연금에 손실을 입힌 범죄자의 구속을 임의로 풀어준 정형식 판사에 대해 특별감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국민청원이 사흘 만에 20만명 이상 동의를 얻었다.

하지만 보름 뒤 나온 청와대의 답변은 원론적인 내용에 그쳤다. 청와대는 “사법권의 독립을 위해서는 자의적 파면이나 불리한 처분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하려는 신분상 독립이 필수적”이라며 법관 파면은 청와대 권한 밖의 일이라고 못 박았다. 다만 “법관의 비위사실이 있는 경우 사법부가 징계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면서 “청원 내용을 법원행정처로 전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국민이 재판에 대해 비판하는 여론이 청원을 통해 반영되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악의적 인신공격이 아니라면 국민의 비판은 새겨듣는 것이 사법부뿐 아니라 행정부 입법부 모두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정 부장판사는 지난달 28일 발표된 법원 정기인사에 따라 서울회생법원장으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김 지사에게 실형을 선고한 재판부 사퇴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은 1심 판결 이후 하루 만에 청와대 답변요건을 갖췄다. 김 지사 판결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청원을 통해 나타났다는 평가다. 실제로 1심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가 김 지사의 유죄를 지적하면서 ‘~로 보인다’는 식으로 ‘심증’을 쓴 부분이 80차례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권 일각에서는 김 지사에게 적용된 컴퓨터 등 장애방해업무 혐의만으로 실형이 선고된 예가 거의 없고, 대법원 양형기준인 1년 6개월을 넘어선 점을 문제삼고 있다. 하지만 야권을 중심으로 특정 법관의 판결을 비난하고 ‘탄핵’까지 거론하는 건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김 지사 판결이 여야 간 정쟁으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청와대의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