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는 손님들도 없지만 저희들도 안 써요.”
설 연휴가 본격 시작된 지난 2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의 한 식료품 상점 직원 A씨(48)는 “제로페이로 결제하는 손님이 있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경동시장은 제수용품을 구입하려는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A씨가 일하는 가게 출입문에는 제로페이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그는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손님도 10명 가운데 1명 꼴인데 제로페이를 쓰는 사람이 있겠느냐”며 “주인도 현금 받으라고만 하지, 제로페이 쓰라고 말한 적 한 번도 없다”고 전했다.
서울시가 영세 소상공인의 카드 수수료 부담을 낮추겠다며 내놓은 간편결제 서비스 ‘제로페이’는 시범서비스를 시작한지 한 달하고 보름을 맞았다. 그러나 제로페이는 여전히 외면받고 있다. 제로페이는 소비자가 매장에 비치된 QR코드(격자무늬 바코드)를 자신이 사용하는 네이버페이 등 간편결제 애플리케이션(앱)이나 은행 앱을 통해 스캔해 결제하는 서비스다. 앱에 연동된 은행 계좌에서 판매자 계좌로 돈이 즉시 이체된다. 서울시는 차후 판매자가 소비자 QR코드를 스캐너로 찍거나 스마트폰 접촉만으로 결제가 이뤄지는 방식을 추가 도입할 방침이다.
소비자의 변화는 아직 ‘무반응’에 가깝다. 문제는 소상공인 반응도 싸늘하다는 점이다. 상점에 근무하는 점원들은 솔직한 의견을 털어놨다. 경동시장의 한 반찬 매장에 일하는 50대 여성 B씨는 “제로페이를 쓰면 매출이 다 (소득으로) 잡히는데 어느 주인이 그걸 쓰고 싶어 하겠느냐”며 “나 같아도 ‘(제로페이로) 현금을 이체할 거면 그냥 돈으로 주시면 안 되겠느냐’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북구의 한 시장에서 일하는 C씨(56)는 4일 “신용카드처럼 (결제를) 안 받으면 손님이 돌아가는 것도 아닌데 제로페이로 결제해 달라고 할 이유가 별로 없다”며 “한 달 순수익이 1000만원이어도 소득신고는 200만원, 300만원 번다고 낮춰 신고하는 게 태반이다. 그깟 수수료 몇 푼 깎아준다고 소상공인이 반길 것이라는 건 정말 순진한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최소한 전통시장에서 제로페이가 활성화될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다.
제로페이처럼 소상공인, 특히 전통시장을 지원한다는 목적으로 탄생한 온누리상품권을 어떨까. 정부가 지난 31일까지 1인당 50만원 한도로 10% 할인 판매한 온누리상품권에 대한 여론도 싸늘했다. 이번 설을 앞두고 정부가 4500억원어치 온누리상품권을 풀었고, 판매처인 은행에선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 실제 시장 유통량은 평소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 수유시장의 상인 D씨는 “매년 명절마다 온누리상품권 쓰는 사람들은 죄다 공무원뿐인데, 올해도 10명 가운데 1명 정도 쓸까 말까하다”고 말했다. ‘싹쓸이 소문’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방송에 나와서 그런 일이 실제로 있나 싶긴 한데, 주변에 그런 방법을 얘기하는 상인들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온누리상품권 부정유통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과거엔 상품권 가맹점 상인들이 직접 할인된 상품권을 구매하고 환전해 문제가 됐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5년 온누리상품권 부정 유통 적발 건수는 1631건에 달했다. 상인들이 할인된 상품권을 구매할 수 없도록 제도가 바뀐 2016년부터는 적발건수가 급감했다. 2016년도 2건, 2017~2018년 14건에 그쳤다.
은행들도 매년 명절마다 온누리상품권 판매로 분주했다. 다만 올해는 상황이 좀 다르다는 말이 나온다. 서울의 한 시장 인근 점포에 근무하는 행원은 “점포 안에 대기하시는 고객 20명 가운데 15명이 상품권 고객인 경우도 있었다”며 “할인 폭이 커서 그런 지 구매하시는 고객들이 많은데, 모두 실수요자이신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수상한 구매’를 단속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한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주는 “온누리상품권이 들어오면 거래처에 물건 값 대신 상품권으로 주는 경우가 많다”며 “상품권이 화폐처럼 사용되는 시장 안에서는 더더욱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중소기업벤처부는 가맹점의 부정 유통이 적발될 경우 가맹 취소와 함께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사안에 따라 형사고발까지 검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