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팔소리/ 천지 진동할 때에/ 예수 영광 중에 구름 타시고// 천사들을 세계 만국/ 모든 곳에 보내어/ 구원받은 성도들을 모으리//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부를 때에 잔치 참여하겠네.’
찬송가 180장 ‘하나님의 나팔소리’를 이토록 리듬감 있게 듣게 될 줄 몰랐다. 손뼉을 치며 조금 빠르게 부르던 느낌 대신 어깨를 들썩이며 편안하게 연주로만 듣는 펑크 재즈 버전이다. 피아노와 기타가 메인 선율을 연주하기 전까진 찬송가임을 알아채기 힘들었다. 그저 여피족이 즐겨 듣는 세련된 재즈 연주곡인 줄 알았다.
재즈에 찬송가 선율을 담는 재즈 피아니스트 배진아(29)씨를 1일 서울 용산구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배씨는 2016년 5곡이 담긴 미니 앨범 ‘리빙 사운드’를 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하나님의 나팔소리’ ‘예수 사랑하심을’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와 같은 찬송가 연주곡과 CCM 가수 나오미와 함께한 노래 ‘거룩하신 하나님’이 수록됐다. 2016년 피아노 기타 드럼 베이스로 구성된 ‘배진아 쿼텟’을 구성한 배씨는 지난해 8월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소극장에서 무료 재즈 공연을 펼쳤다. 젊은이들에게 재즈라는 형식을 빌려 찬송가를 적극 어필하기 위해서였다.
“찬송가 선율에 재즈가 결합했을 때 시너지가 엄청납니다. 재즈는 형식이 자유로워서 신나게 혹은 슬프게 하는 등 수많은 변주가 가능하죠. 깊이 있는 묵상을 이끄는 배경 음악이 되기도 하고 신나서 할렐루야를 외치는 변주 역시 가능해요. 음악적 수준을 유지하면서 귀에 듣기 좋고 편하고 신나는 재즈 음악에 찬송 선율이 무수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거죠.”
‘예수 사랑하심을’ 도입부엔 피아노 선율이 엇박자로 부딪치며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 다른 악기들은 편안하게 진행하며 피아노를 감싼다. 후렴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에 들어서면 수면 아래에 있던 피아노가 올라오며 고음으로 연주된다. 절정에선 ‘날 사랑하시는 말씀을 성경에서 본 듯한’ 환희의 순간을 전달한다.
“재즈와 가스펠은 원래 한 뿌리입니다. 아프리카 노예들이 미국 뉴올리언스에 정착해 시작한 음악이 재즈이고, 가스펠은 그 노예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목사님들이 성경을 들고 말씀을 전한 데서 시작했어요. 그 깊고 넓은 매력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서울 용산구 작업실에서 ‘클로이 재즈’로 명명한 재즈 클래스를 열어요. 재즈의 100년 역사를 배우면서 음악도 듣고 피아노도 배우는 거죠.”
클로이 재즈를 통해 받는 수강료로 배씨는 대학로 무료 공연을 할 수 있었다. 소극장 대관은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교단에 속한 미와십자가교회(오동섭 목사)가 도왔지만 악기 대여와 멤버들 연주비, 식비 등은 모두 자비로 충당했다. 메이저급 연주자가 아니면 티켓값 3만원을 넘기 힘들다. 따라서 100석을 채운다 해도 표를 팔아선 대관료조차 대기 힘든 게 현실이다. 재즈는 또 팬덤이 두텁지 않은 장르여서 경제적 넉넉함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런데도 배씨는 “그저 피아노 치는 할머니로 늙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친구들이 공연에 와서 ‘와 찬송가도 이렇게 재밌구나’하고 말해주면 족하다”고 덧붙였다.
배씨는 인생의 동반자가 된 피아노를 교회에서 처음 만났다. 피아노가 치고 싶어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교회에 나갔다. 그는 “부산이 고향이고 고신 쪽 교회였는데, 지금은 아니었지만 당시만 해도 일요일에 돈 쓰면 안 된다고 할 정도로 엄숙한 교회였다”고 말했다.
배씨가 몰래 교회에 나가자 집안이 난리가 났다. 친할머니는 부산에서 내로라하는 무속인이었다. 작두 타는 모습을 본 것도 여러 번이다. 아버지 역시 불교 신자였다. 한 집안에 두 종교가 들어오면 우환이 들어선다고 해서 막무가내로 교회를 못가게 하던 시절이었다.
“중학생이 되어선 영적 성장이 더 이뤄지면서 ‘나는 꼭 반주자가 될 거야’라고 다짐했어요. 그런데 아뿔싸. 이번엔 할머니가 이상해지셨어요. 어느 병원을 가더라도 병명을 몰랐고, 시름시름 앓으셨죠. 그러다 동생이 교통사고가 나죠. 12시간 수술해서 간신히 살았는데 2년간 병원에 있었죠. 동생이 회복실에서 나오자마자 아빠에게 한 이야기가 ‘우리 교회 안 가면 다 죽어’였대요. 할머니는 구역예배 때 몸에 있던 귀신이 쫓겨나면서 먹은 걸 다 게워내고 바르르 떠시더니 갑자기 꼬부랑 할머니가 되셨죠. 전에만 해도 허리 꼿꼿하고 눈에도 기운이 가득했거든요. 할머니가 부탁해서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크게 인쇄해 방에 붙여 드렸어요. 할머니가 개종하자 할머니를 따르던 그 밑에 무당들도 전부 다 그만뒀어요. 그게 그들의 규칙이더라고요.”
배진아 쿼텟 멤버들 역시 모두 크리스천이다. 기타를 맡은 권재기씨는 교회 집사 직분이고, 드럼의 박재준씨는 북을 통해 한정된 음의 높낮이를 표현하며 베이스의 장태희씨는 우직하게 리듬을 잡아주는 스타일이라고 배씨는 소개했다. 배씨는 “세상의 수많은 음악 속에서 찬송가와 복음성가를 일상에서 끊임없이 가까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