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이 공중급유기(KC-330) 도입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1949년 창군 이후 70년 만에 이뤄진 숙원사업이라는 점 때문이다. 공군의 한 예비역 중장은 3일 “공군의 숙원사업이 이제야 이뤄졌다. 공군이 한 차원 달라지는 계기”라고 평가했다.
이번에 도입한 공중급유기는 유럽 에어버스사에서 만든 다목적 공중급유기(MRTT)이다. 이 기종은 호주, 프랑스, 사우디아라비아,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 영국 6개국이 이미 운용하고 있다. 한국은 이 기종을 도입한 7번째 국가다. KC-330은 날개 폭 60.3m에 기체 길이 58.8m, 높이 17.4m다. 최대 속도는 마하 0.86(음속의 0.86배), 최대 순항고도 1만2600m, 최대 항속거리 1만5320㎞다. 최대 연료 탑재량은 24만5000파운드(lb)이며 300여명과 화물 47t을 운송할 수 있다. KC-330은 공군 주력인 F-15K 전투기의 경우 10여대, KF-16 전투기는 20여대까지 급유할 수 있다.
공군 전투기의 체공 시간은 크게 증가할 수 있게 됐다. 공군은 “공중급유기 전력화로 원거리 작전능력이 크게 향상돼 독도, 이어도를 포함한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전역에서 보다 효과적인 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공군 내부에서는 “이제야 제대로 된 작전 수행 여건을 갖추게 됐다”는 말이 나왔다. 공중급유기 도입 전에 F-15K는 독도에서 30분간, 이어도에서 20분간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KF-16은 독도에서 10분간, 이어도에서 5분간만 작전이 가능했다. 앞으로는 임무 중 공중급유기로 한 번 급유를 받으면 F-15K와 KF-16의 작전 가능 시간이 1시간씩 늘어난다. 다만 군 관계자는 “작전시간은 전투기 기동 방식에 따라 차이가 크다”며 “갑자기 속력을 높이거나 크게 방향을 바꾸는 전투 기동을 하면 그만큼 연료 소비량은 급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먼저 이어도 작전시간 확대는 우리 영토·영공 수호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군사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곳은 한국과 중국, 일본의 방공식별구역(ADIZ·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이 겹치는 지역이다. 중국 정찰기는 우리 군의 대응 능력을 떠보려는 듯 이어도나 제주도 인근 상공으로 진입해 KADIZ와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를 헤집고 다니는 비행을 해왔다. 방공식별구역은 주권이 인정되는 영공은 아니지만 영공 침범과 우발 충돌을 막기 위해 설정해놓은 것이다. 이 구역에 진입하려는 외국 항공기는 관할 군 당국의 사전허가를 받는 것이 관례이지만, 중국은 번번이 이를 어기고 KADIZ에 무단 진입한다.
우리 공군 전투기는 KADIZ를 넘어온 중국 정찰기에 따라붙어 추적·감시 비행을 하다가, 이 정찰기가 JADIZ로 넘어가면 복귀하곤 했다. KADIZ에 들어온 중국 정찰기와 가까운 지역에서 임무 대기 중이던 공군 전투기가 출격, 접근해 경고방송 등을 통해 중국 정찰기를 KADIZ 밖으로 쫓아낸 뒤 기지로 돌아오는 방식이었다. 이런 작전은 우리 전투기들이 JADIZ를 사전통보 없이 넘어갈 수 없는 데다 연료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중국 정찰기를 계속 비행하며 따라다닐 수 없는 측면이 컸다. 중국 정찰기는 5시간 가까이 이동하며 공군 전투기가 따라붙으면 JADIZ로 넘어갔다가 공군 전투기가 되돌아가면 다시 KADIZ로 들어오는 ‘얌체 비행’ 패턴을 보여왔다.
앞으로는 중국 항공기 대응작전에 상당한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공군은 현재 중국 항공기의 KADIZ 무단진입 시 전투기뿐 아니라 이번에 도입한 공중급유기를 함께 출격시켜 계속 중국 항공기를 따라붙도록 하는 작전을 검토 중이다. 우리 전투기가 JADIZ를 넘지는 않더라도 더 이상 중국 항공기가 KADIZ에 재진입하지 못하도록 KADIZ 내에서 대응 비행을 계속하겠다는 전략이다.
중국이 ‘월말 정례훈련’을 실시하듯 KADIZ를 넘어오는 데에는 여러 의도가 깔려 있다고 군사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특히 과거 중국 당국은 한·중 간 방공식별구역이 일부 겹치는 데 대해 ‘이어도는 수면 아래 암초이기 때문에 영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주장을 펴기도 했다. 또한 중국 정찰기가 동중국해에서 영토분쟁 중인 일본을 겨냥해 보란 듯이 KADIZ·JADIZ를 넘나드는 비행을 해왔을 가능성도 있다.
독도 작전시간이 크게 늘어나는 것 역시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한국 영토인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일본의 군사 도발 가능성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방국인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는 지난해 12월 20일 독도 동북쪽 160㎞ 해상에서 우리 광개토대왕함에 거리 500m, 고도 150m로 위협비행을 한 데 이어 세 차례 이와 비슷한 비행을 감행하는 등 우리 군에 실질적인 군사적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공중급유기 도입은 다음 달 말쯤 들어오는 스텔스 전투기 F-35A를 포함해 공군 전투기들의 무장 강화에 상당한 도움이 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공군 전투기들은 비교적 먼 거리 비행을 뛸 때 외부 연료 탱크를 달고 비행했는데, 앞으로는 연료 탱크를 달지 않는 대신 그만큼 공대공미사일 등 무장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공중급유기가 도입됨으로써 전투기 한 대가 공격할 수 있는 표적 수가 늘어나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앞으로는 ‘레드 플래그 알래스카(Red Flag-Alaska)’ 훈련과 같은 장거리 해외 원정훈련을 할 때 미군 공중급유기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레드 플래그 알래스카는 미 태평양공군사령부가 주관하는 다국적 연합 공군훈련이다. 우리 공군은 F-15K 전투기 등을 투입해 이 훈련에 참가해왔다. 그동안은 훈련 장소인 미 알래스카주(州)까지 이동하기 위해 미 공군의 공중급유기로 급유를 받아야 했는데 이제는 우리 공군 전력으로 공중급유를 받으며 이동할 수 있게 됐다.
공군의 숙원사업이던 공중급유기 도입 예산은 오랫동안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다. 주로 북한 도발에 대비하는 데 국방 예산이 집중돼 있었고, 공군 전투기들의 장거리 이동에 필요한 공중급유기 도입이 급하다고 판단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변국 군사력 강화와 테러를 포함한 전방위 위협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공중급유기 도입을 더 이상 미루기는 어려운 상황이 됐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