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설 선물? YS의 멸치 사랑·노무현 ‘지역 안배형’ 선물 처음 선보여

입력 2019-02-04 05:00

추석과 설날 등 큰 명절 때마다 공개되는 대통령의 ‘명절 선물’은 늘 관심의 대상이다. 대통령이 선택하는 선물에 대한 궁금증도 작용하지만, 선물을 통해 대통령의 선물관(觀)이나 정치철학까지 짐작할 수 있어서다.

문재인 대통령의 올해 설 선물은 경남 함양의 솔송주, 강원 강릉의 고시볼, 전남 담양의 약과와 다식, 충북 보은의 유과 등 전국 각지 전통식품 5종 세트다. 청와대는 이들이 오랫동안 각 지역에서 우수 전통식품으로 사랑받아온 식품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구성된 선물은 군·경 부대 중 최동단, 서북단, 남단, 중부 전선과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개발에 참여한 연구원, 각종 재난 사고 때 구조 활동에 참여한 의인, 독거노인, 희귀난치성 환자, 치매센터 종사자 등을 중심으로 전달된다. 국가발전을 위해 헌신한 각계 원로, 국가유공자 가족 등에게도 전달될 예정이다.

◆지역 안배 농산물 단골 메뉴, YS·DJ 특정 품목 고집

역대 대통령들의 명절 선물을 살펴보면, 구성과 콘셉트는 각자 제각기였다. 멸치나 김 등 특정 품목만 고집하던 대통령도, 선물이 아닌 격려금을 선호하던 이도 있었다. 지역 안배형 농산물 세트는 역대 대통령 다수가 선호한 단골 메뉴였다.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은 명절 선물로 주로 인삼을 선호했다. 인삼을 담은 나무상자에는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 문양을 새겨넣어 ‘봉황 인삼’으로 불리기도 했다. 1970~80년대는 이처럼 권위를 은연중에 드러내는 선물이 주를 이뤘고, 선물을 받는 대상자도 대통령 측근과 정·관계 인사 등 일부에 불과했다. 군 출신의 노태우 전 대통령은 명절 선물로 격려금을 선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선물이 소박하게 바뀌는 대신 대상이 대폭 확대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명절 선물로 멸치잡이 사업을 하던 부친이 보내준 고향 거제도 멸치를 선물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명 ‘YS멸치’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신안군의 특산품인 김과 한과·녹차 등을 주로 선물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지역 안배형’ 명절 선물을 선보였다. 지역 균형발전을 주요 국정 목표 중 하나로 삼았던 참여정부의 정치철학이 느껴지는 지점이다. 특히 2006년에는 사회 각계각층에 ‘전국 8도 쌀’을 선물했는데 이는 쌀 관세화 유예 협상 비준안 통과로 쌀 시장 개방을 걱정했던 농민들을 위로하는 차원이었다.

지역 안배형 선물과 더불어 술 선물도 노 전 대통령의 단골 명절 선물 품목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복분자주 소곡주 문배주 이강주 등 해마다 전국 각지의 민속주를 선택해 각계에 보냈다.

기업인 출신의 이명박 전 대통령도 지역 특산 농산물을 주로 애용했다. 2012년에는 사회적 기업에서 생산한 떡국과 참기름 등으로 구성된 선물을 각계각층에 보내기도 했다. 최초 여성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수령자에 따라 다른 선물을 보낸 점이 눈에 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롯한 소외계층에게는 보은 대추와 장흥 표고버섯, 통영 멸치로 구성된 농수산물 세트를 전달했고 주한 외국공관장들에게는 중소기업의 화장품 세트를 선물했다.

정대철 민주평화당 상임고문은 2003년 민주당 대표 시절 기자간담회에서 역대 대통령들의 선물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정 상임고문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은 금박 봉황이 박힌 인삼과 수삼을 보내왔다”고 했고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선 “100만원인가 200만원인가 줬다”고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선 “죽으나 사나 멸치”라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선물에 대해선 농담을 섞어 “시시해서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