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세계랭킹 1위 윤성빈, 다시 평창에서 보려면…

입력 2019-02-03 05:01
윤성빈이 지난해 2월 15일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올림픽 남자 스켈레톤 2차 주행에서 역주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남자 스켈레톤의 간판 윤성빈(25)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세계 최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당시 스켈레톤이 생소한 불모지 한국에서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찬사가 뒤따랐다. 평창올림픽이 성황리에 끝나고 1년이 지난 지금, 윤성빈은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월드컵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건재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는 ‘외로운 세계랭킹 1위’나 다름없다. 세계적인 스타가 나왔지만 정부와 지자체, 체육단체의 지원은 지지부진하다.

윤성빈은 3일 현재 2018-2019시즌 월드컵 점수 1045점으로 세계랭킹 1위에 올라 있다. 2014 소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알렉산드르 트레티야코프(러시아·1044점)에게 1점 차로 앞서고 있다. 올림픽에 이어 월드컵까지 정복 중인 것이다.

윤성빈을 올 시즌 출전한 월드컵 5개 대회에서 입상 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지난해 12월 1·2차 월드컵에서 2연속 동메달을 따냈고, 지난달 초 3·5차 대회(4차 대회는 취소)에서 2연속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달 25일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린 6차 대회에서는 시즌 첫 금메달을 따내며 올림픽 챔피언의 위용을 보여줬다. 윤성빈은 평창올림픽 이후에도 꾸준한 성적을 내며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반짝 스타’가 아니었다.

윤성빈(가운데)이 지난달 25일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린 2018-2019 시즌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월드컵 6차 대회 남자 스켈레톤 경기에서 우승한 뒤 기뻐하고 있다.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제공

그러나 스켈레톤, 봅슬레이 등 썰매 종목 지원의 차원에서 바라본 한국 체육계의 현실은 어둡다. 윤성빈은 평창올림픽 이후 국내에서 훈련할 곳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해외 전지훈련을 다녀야 했다. 그 마저도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공식 연습기간에 트랙을 타보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현재 평창올림픽 슬라이딩센터는 관리 및 운영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잠정 폐쇄됐다.

윤성빈을 포함한 한국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은 지난달 29일 6차 월드컵 일정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윤성빈은 “내 경기력이 지난해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경기에서 그런 부분이 드러난다”며 “사실 랭킹이나 성적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열악한 훈련 여건을 의식하고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그는 “월드컵도 있지만 오는 3월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 맞춰 경기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평창올림픽 때처럼 최선의 기량을 낼 수 있도록 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이용 대표팀 총감독은 평창올림픽 이후 꾸준히 정부 및 관계단체의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이 감독은 “올림픽 이후 훈련시설이 마땅치 않아 굉장히 힘들었다. 해외 전지훈련에서도 경기장 대여를 할 수 없을 때가 많았다”며 “우여곡절 속에서 선수들이 흔들림 없이 기량을 발휘해줘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올림픽 이후 힘든 상황 속에서 선수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성적 얘기를 잘 꺼내지 않는다고 한다. 올림픽 이후 후원사들의 지원은 늘었지만 대표팀 선수들이 풍족하게 훈련을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 전경. 김지훈 기자

일단 대표팀 선수들이 꾸준히 연습할 수 있는 훈련 장소(트랙)가 확보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다. 평창 슬라이딩센터는 총 건설비 1141억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간 관리 비용은 12억원가량 소요되는 것으로 추산됐다. 평창올림픽 개막 전부터 사후 시설활용 방안을 두고 문제가 불거졌으나, 제때 원만히 해결하지 못했다. 관리·운영의 주체나 비용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부족했다. 현재는 강원도개발공사가 위탁운영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달 21일 강원도청 등 관계기관과 함께 ‘평창올림픽 기념재단(가칭)’을 설립해 사후시설을 운영하는 방안을 내놨다. 강릉 스피드스케이팅장, 강릉 하키센터, 평창 슬라이딩센터 등 3개 시설에 대한 시설 관리 및 재정 지원을 하는 것이 재단의 주요 사업 중 하나다. 문체부는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가 해산되는 오는 3~4월 올림픽 기념재단 설립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 올해 하반기까지 운영 방식과 정부 지원 규모·방식을 결정할 예정이지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올 시즌 내 대표팀 선수들이 평창 트랙을 타보는 것은 사실상 물 건너간 셈이다.

윤성빈이 지난해 2월 16일 강원도 평창군 메달플라자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남자 스켈레톤 메달수여식에서 금메달을 든 채 밝게 웃고 있다. 윤성호기자

정부와 강원도는 평창에서 또 한 번의 국제대회가 열리기를 희망하고 있다. 아직 개최지가 미정인 2021 동계 아시안게임을 남북이 공동으로 유치하는 것이다. 국가대표 선수의 성장뿐 아니라 성공적인 대회 유치 및 개최, 동계 종목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사후 시설 활용 문제는 비중 있게 다뤄져야 한다. 윤성빈이 다시 한 번 평창 트랙을 빛내는 모습을 하루빨리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