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영상] 김복동 할머니, 당신이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입력 2019-02-01 22:32 수정 2019-02-01 22:44
뉴시스

고(故) 김복동 할머니가 노란 나비 되어 떠나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와 여성 인권운동의 상징이었던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이 1일 오전 엄수됐다. 시민장으로 닷새 간 진행된 장례식은 김 할머니의 마지막을 배웅하려는 시민들로 발 비딜 틈 없었다. 이들은 손에 노란 나비를 들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김 할머니의 유골은 서울 시청광장과 옛 일본대사관 앞을 지나 충남 천안 망향의 동산에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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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할머니 운구 행렬은 이날 오전 6시30분쯤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발인을 마친 뒤 생전 머물렀던 평화의 우리집을 찾았다. 윤홍조 마리몬드 대표가 영정을 들고 앞서 걸었고 상주를 맡은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와 진선민 여성가족부 장관 등이 뒤를 따랐다. 김 할머니는 그동안 자신에게 위로와 평온을 주었던 이곳과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이후 오전 8시40분쯤 시청광장에 도착했다. 평화나비와 마리몬드 등 시민단체들은 만장 94개를 들고 운구차를 에워쌌다. 94는 할머니의 별세 당시 나이를 의미했다. 만장에는 ‘당신이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우리의 영웅 김복동’ ‘일본군 성노예 책임자 처벌’ 등의 문구가 쓰였다.

운구 행렬은 시청광장에서 일본대사관까지 1.3km를 걸어서 이동했다. 이 공간에는 김 할머니의 생전 육성이 퍼져 자리한 이들을 숙연케 만들었다. 이들은 오전 9시45분경 일본대사관 건물 앞에서 잠시 멈춘 뒤 “일본은 공식 사죄하라”고 외쳤다. 이곳은 김 할머니가 생전 마지막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수요집회가 열린 곳이다. 매주 수요일 정오마다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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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조 마리몬드 대표는 “(김복동) 할머니는 돌아오지 못하거나 익명으로 살아가는 피해자들의 상징이 되어 살아오셨다”며 “거리에서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한 인권운동가이고 국내외에서 전시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호소해 오셨다”고 김 할머니를 소개했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는 “김 할머니가 전쟁과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편견을 모두 이겨내고 마음속에서 희망의 나비로 되살아나고 있음이 느껴진다”며 “할머니의 장례식을 찾은 많은 이들을 보며 할머니의 죽음이 사람들의 행동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민지, 최민석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