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미투’ 설 연휴에 UN 간다 “학교는 변하지 않았다”

입력 2019-02-02 10:00
‘스쿨미투’(SchoolMeToo·학내 성폭력 고발) 운동을 해온 청소년 당사자와 ‘청소년페미니즘모임(청페모)’ 활동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는 설 연휴인 2월 초중순에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초청을 받아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한다. 이들은 한국에서의 스쿨미투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지지를 호소할 계획이다. 사진=청소년페미니즘모임 제공

설 연휴 기간, 고향 대신 스위스로 향하는 이들이 있다. 지난해부터 ‘스쿨미투’(SchoolMeToo·학내 성폭력 고발) 운동을 해온 청소년 당사자와 ‘청소년페미니즘모임(청페모)’ 활동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다. 이들 세 사람은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초청을 받아 한국에서의 스쿨미투를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스위스 제네바 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청페모 활동가는 1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스쿨미투 고발자들은 여전히 한국 사회와 교실에서 말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며 “스쿨미투가 이대로 멈추지 않도록 하고, ‘학내 성평등’이라는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아동보호 차원에서 일정이 마무리될 때까지 참석자들의 구체적인 신원 및 사전심의 일자는 비공개토록 했다.


-유엔에서 초청받았을 때 어땠는지?

스쿨미투 이후 정부에선 별다른 대책도 내놓지 않던 상황이라 국제사회에라도 알리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초청은 예상치 못한 일이라서 굉장히 놀랐다. 사실 청소년 당사자나 청소년페미니즘 모임에는 여권도 없는 사람도 많아서 ‘국제사회에 나갈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또 지난해 12월 중순에 연락을 받아서 2월에 가야 하니 시간도 촉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쿨미투가 이대로 멈추지 않게 하고,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유엔에 가기로 결정했다. 유엔에 가서 사전심의를 잘 마친 뒤 오는 9월 본심의 때 스쿨미투가 상정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사진=청소년페미니즘모임 제공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 초청된 계기가 지난해 11월 유엔에 제출한 ‘아동에 대한 성적 착취와 성적 학대에 관한 보고서’다. 어떤 내용들이 담겼는지?

한국에서 스쿨미투 운동이 얼마나 파급력이 큰 이슈였는지에 대한 설명과 왜 청소년들이 거리에 나서게 됐는지를 담았다. 특히 당시에는 정부에서 스쿨미투에 대해 실효성 있는 대책을 거의 내놓지 못한 상황이었다. 가해교사 10명 중 4명은 제대로 된 처벌 없이 복직한 상황이다. 구체적인 해결을 위해 전수조사와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 등을 설명하고,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서 대한민국을 심의할 때 이러한 권고안을 심의해달라고 요청했다.

-주요 일정은?

크게 두 가지 테이블에 참석한다. 하나는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대한 사전심의다. 대한민국에서 아동권리협약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부분들, 또 더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뭔지에 대해 청페모의 이름으로 발제를 할 예정이다. 다른 하나는 아동미팅이라는 게 따로 있다. 아동당사자가 위원들을 만나 좀 편안한 분위기에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청소년 당사자가 학내에서 경험한 성차별과 성폭력 경험들이나 스쿨미투 집회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유엔에서 발언할 내용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최대한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유엔에 가려고 오프라인으로 전국 5개 지역에서 스쿨미투에 대한 전국적인 지지 서명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를 크게 5가지로 분류했다.

첫 번째는 학내 성폭력을 전수조사 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70곳 넘은 학교에서 스쿨미투 고발이 나왔지만, 여전히 보복이나 비난이 두려워 고발되지 못해 망설이는 피해 학생들이 많다. 정부가 책임 있게 전수조사를 하고 이후 학내 성평등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안이다. 두 번째는 교원에 대한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다. 스쿨미투는 학생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교사들이 오히려 성평등을 배워야 할 필요성을 여실히 알려준 사안이다.

국민일보DB

세 번째는 사립학교법 개정이다. 대다수 스쿨미투가 사립학교에서 나왔다. 하지만 사립학교는 교육청 징계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그만이라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이들을 제대로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어왔다. 네 번째는 학생인권법 제정이다. 많은 학내 성폭력이 교사와 학생 간 위계에 따른 권력형 성폭력이다. 학생이 부당한 인권침해에 저항할 수 있으려면 학생이 직접 학교 운영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지난해 4월, 서울 노원구 용화여고의 모습. 재학생들이 교실 창문에 포스트잇을 붙여 미투운동에 나서면서 용화여고는 '스쿨미투'의 상징이 됐다. 국민일보DB

마지막으로 수사기관의 적극적인 수사를 요구한다. 최근 용화여고 스쿨미투에 대해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가해교사를 불기소처분 했다. 200명 가까운 학생들의 직접적인 증언이 어떻게 불충분할 수가 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스쿨미투 운동을 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한 해가 바뀌면서 고발 피해자들이 졸업을 앞두게 된다거나, 지난한 싸움 때문에 고발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용화여고 가해 교사에 대한 불기소처분 이후 기사 댓글을 봤는데, 피해 학생들이 용기를 낸 고발을 음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힘겹게 꺼낸 목소리를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볼 때마다 힘이 들 때가 있다. 미투가 지겹다는 사람이 있지만 현실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청소년페미니즘모임 제공

-귀국 후 향후 활동 계획은?

우선 유엔에서의 성과를 보고하고, 정부에도 면담을 요청할 계획이다. 또 2월16일에는 ‘스쿨미투 1년, 대한민국 정부는 응답하라’를 주제로 집회를 연다. 스쿨미투가 1년이 지났지만 여태 목격한 것은 가해자 처벌이나 재발방지 대책이 아니었다. 어렵게 고발에 나선 학생을 향한 2차 가해, 미온적 대응으로 일관한 학교와 정부였다.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정부에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할 생각이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