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9일 한 남성이 아침부터 다급한 목소리로 광주북부경찰서 역전지구대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제 아들이 광주에 있는 것 같습니다. 찾아주세요”
남성은 세종에서 가출한 A군(14)의 아버지였습니다. 아들과 함께 가출했던 친구가 최근 집에 돌아가 A군의 소식을 전하자 아버지가 광주로 찾아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가진 단서는 “모텔에 기거하고 있을 것”이라는 아들 친구의 막연한 말뿐이었습니다.
경찰은 작은 단서 하나만을 가지고 A군을 찾기 위해 광주 서구 일대의 모텔을 수소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간절한 아버지의 모습을 본 경찰들은 A군이 머물 법한 모텔들을 열심히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겨우 찾아낸 모텔에서 A군은 이미 떠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모텔 주인은 경찰에게 이상한 말을 전했습니다. “20대 남성이 청소년의 방값을 대신 지불하고 연락처를 남겼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칫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경찰은 연락처를 남겼다는 남성에게 남은 모텔비를 정산해주겠다고 유인해 불러냈습니다.
경찰을 만난 남성은 뜻밖에 A군을 만난 사실을 금세 시인했습니다. 사실 그 남성은 모텔비까지 대신 내줘가며 A군을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를 묻자 이 남성은 “내가 어렸을 때 가출했던 경험이 너무 후회돼 주변에서 가출청소년들과 연락이 닿으면 회유하고 돌려보낸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5년 전부터 가출청소년 사이트에서 가출 청소년들을 접촉해 귀가를 설득한 뒤 십여 차례나 경찰, 시청 등에 인계했다고 합니다.
A군 역시 사연을 듣고 집으로 돌려보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모텔비도 정산해주고 먹을 것도 사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실 선의를 베푼 20대 남성은 배달일을 하면서 힘겹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A군의 모텔비를 내줄 만큼 넉넉한 상황은 아니었던 겁니다. 비용이 부담스러워지자 이 남성은 A군을 포기하는 대신 집으로 데려와 보호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역전지구대 관계자 말에 따르면, 이 남성은 A군의 고민을 A군 아버지에게 전달해주며 소년이 가정에 돌아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고 합니다. 서로 상처가 있음에도 결국 눈물을 흘리며 끌어안는 부자를 보고 현장에 있던 경찰들도 뿌듯해했다는군요.
가족이라는 끈을 놓지 않고 아들을 찾아 달려온 아버지와 작은 단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수사한 경찰,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가출청소년에게 새 희망을 준 20대 남성. 잠시 엇나갔지만 16일 만에 결국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청소년이 이들에게 받은 사랑을 배로 나눠줄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설, 여러분들도 다시 한번 가까운 이들의 소중함과 사랑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이신혜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