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정이 차게 식은 요즘이라고들 합니다. ‘어금니 아빠 사건’ ‘새희망씨앗 기부금 유용 사건’ 등 한푼 두푼 보탠 기부금을 탐욕을 위해 썼던 사건들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기부자들의 실망감을 대변하듯,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사랑의 온도탑은 100도를 넘기지 못할 거라는 비관적 전망이 많았습니다. 이 사회의 온정은 정말 사라진 걸까요.
서울 쌍용중학교에 재학 중인 조휘성 군은 지난해 12월 26일 첫 증상이 생긴 이래로 지금껏 급성 골수성 백혈병과 투병하고 있었습니다.
조군의 부모는 조군의 치료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니, 최선을 다하려 했습니다. 소고기 자주 먹이라는 담당 주치의의 조언도, 칫솔과 치약 등 생필품을 백혈병 환자 전용품으로 바꿔야 한다는 환자 수칙도 지키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치료비는 암 투병 중인 어머니와 건강이 상한 아버지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불어났습니다.
유튜버 유정호는 지난 1월 27일 ‘조금만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영상을 통해 조군의 사연을 소개하고 시민들의 온정을 구했습니다. 유정호 본인도 개인적인 일로 형사 재판을 치르고 있는 와중이었지만 그는 직접 조군의 집을 찾아가 가족을 인터뷰했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에는 조군의 어머니에게 “휘성이 소고기 사주라”며 돈을 쥐여주고 도망치기도 했죠.
영상이 게재된 지 12시간 후, ‘조휘성 항암 치료비 및 입원비용 모금’ 계좌에는 총 6336만 3254원이 모였습니다. 영상 댓글창에는 아이돌 콘서트 가려고 모으던 8만원을 보냈다는 초등학생 등 수백 건의 기부 인증이 잇따랐습니다. 유정호는 모금액 전부가 조군의 골수이식 수술비 등에 사용될 것이라고 공지했습니다.
“정말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우리 휘성이 잘 키워서, 정말 받은 만큼 베풀며 살겠습니다”
- 조군의 어머니 曰. 유튜브 채널 ‘유정호tv' 영상
좋은 소식은 또 있습니다.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설치한 사랑의 온도탑은 1월 31일을 기준으로 4152억원(잠정집계)을 모금해 100도를 넘겼습니다. 목표액인 4105억원보다 47억원 많은 금액입니다.
기사를 시작하며 물었던 질문을 여러분께 다시 던지고 싶습니다. 이 사회의 온정은 정말 사라진 걸까요. 이웃을 돕자는 사람들의 온정은 지금도 조군의 후원계좌를 비롯해 도움이 필요한 곳곳에 함박눈처럼 조용히 쌓이고 있지 않을까요. 그 온정의 건재함을 믿기에, 아직 살만한 세상입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선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