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한 민족 대명절 설을 맞았지만 부동산 시장에는 냉기가 더해지고 있다. 연휴 직전 전국 아파트 가격은 서울 집값(-0.14%)을 필두로 매매와 전세를 막론하고 하락폭이 확대됐다. 분양 시장에도 지난해 청약제도 개정을 앞두고 미뤄졌던 신규 공급물량이 연휴가 지나면 쏟아질 예정이다. 멸실(없어지는 집)은 줄어들고 공급이 늘어나면서 내놔도 팔리지 않는 매물을 바라보며 다주택자들의 시름 역시 깊어지고 있다.
한국감정원이 1일 발표한 전국 주간 아파트가격 동향에 따르면 전국 집값은 매매가격(-0.10%), 전세가격(0.13%) 모두 떨어졌다. 수도권(-0.07%→-0.09%) 및 서울(-0.11%→-0.14%)은 물론 지방(-0.09%→-0.11%)도 하락폭이 커지면서 지난해 집값 급등이 무색할 만큼 경쟁적으로 미끄럼틀을 타고 있다.
서울, 특히 강남이 집값 하락을 주도하는 모양새다. 강남구가 개포동 구축 아파트 매매가 하락에 힘입어 -0.59%나 떨어진 가운데 강남4구가 전주 -0.19%에서 이번주 -0.35%로 가격 하락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강남4구는 2012년 9월(0.41%) 이후 330주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가격이 떨어졌다. 목동, 흑석·노량진 등 실수요 인기지역도 신규물량 공급 등에 힘입어 약세를 보였다. 대추규제와 보유세, 전세시장 안정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다양한 하방 압력 속에 매수심리 및 거래가 크게 위축되면서 서울 아파트 값은 -0.14%로 12주 연속 하락했다.
시장 내 거래 수요자들도 입장에 따라 희비가 크게 엇갈리고 있다. 집값이 크게 오르는 동안 갭투자를 노리며 상투를 잡은 다주택자들은 과세 부담에 집을 처분하고 싶어도 팔리지 않아 난감한 상황이다. 반대로 실수요자들은 그간 크게 오른 집값이 박근혜정부 막바지 수준으로 떨어지길 기대하며 지갑을 열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매매 수요가 임대로 옮겨가면서 전세가격이 올라갈 타이밍에 가깝지만 정작 신축아파트 입주 등 공급 물량도 늘어나면서 전세가격도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집주인들의 고민이 더 커지는 ‘매수자 우위 시장’이 한동안 지속될 분위기다.
용산구 소재 한 공인중개사는 “거래 심리 자체가 말라버려 급하게 꼭 집을 구해야하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아예 매매거래 건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집값을 1000~2000만원 내린 매물들이 속속 늘어나곤 있지만 지난해까지 1~2억씩 폭등하는 광경을 다들 목격하지 않았냐”며 “최소한 1억씩은 떨어질 때까지 매수자들이 움직이지 않을 거다. 올 한해는 이런 불경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멸실 대비 입주물량이 5년 만에 순증한 점도 집값 및 전셋값 약세가 지속될 것이란 전망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1일 부동산114가 서울에서 진행 중인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 현황을 조사한 결과 2019년 예상되는 주택 멸실은 3만7675가구로 연평균 4.4만 가구였던 예년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 반면 올해 아파트 입주물량은 4만3106가구로 계산해 보면 멸실 주택수는 15% 가량 줄어든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2019년 입주는 물량이 확정된 반면 멸실은 정비사업 지연 여부에 따라 실제론 멸실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며 “희소성이 서울 주택 가격을 밀어올리는 장세는 당분간 기대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정된 주택 공급 속 서울 부동산 반등을 단기간에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무주택자들 역시 분양 시장 ‘큰장’을 두고 고민이 깊어질 전망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3월 아파트 분양예정 물량은 4만4459가구로 전년 동기(2만7518가구) 대비 약 1.6배 많이 쏟아진다. 이에 더해 지난해 12월 청약제도 개편으로 유주택자의 청약 문턱이 높아지면서 경쟁률도 상대적으로 덜 치열할 전망이다. 무주택 실수요자들로선 청약 당첨 기회가 대폭 넓어지게 되는 셈이다.
다만 집값이 계속 내려가는 상황은 고민거리다.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분양가에 시장 불경기가 맞물려 과거처럼 큰 시세차익을 기대하긴 어려워졌다. 더불어 전매제한과 의무거주 요건이 강화되면서 한번 선택을 내리면 운신의 폭을 자유롭게 가져가기도 힘든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맘에 드는 물건을 발견하더라도 지금이 ‘내집 마련’의 타이밍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지기 쉽다”며 “세심한 입지 판단과 치밀한 자금 계획 하에 ‘몇 년 쯤 눌러앉아 살더라도 괜찮다’는 마음가짐으로 소신껏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