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출신 1호 목사는 누구였을까.
제주도 출신 1호 순교자는 누구였을까.
답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고 이도종(李道宗) 목사는 1892년 제주도에서 태어나 1908년 이기풍 선교사를 통해 예수를 영접하고, 평양신학교에 유학한뒤 1927년 목사안수를 받았다.
1948년 4.3 사건 직후인 그해 6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을 돌보기위해 고산에서 대정교회로 오다 재정읍 인향동에서 재산무장대에 붙잡혀 순교했다.
고 이도종 목사는 평양숭실학교를 유학한 뒤 전도인으로 협재교회를 개척했다.
특히 일제치하에서 조선의 독립운동을 위한 비밀결사조직 독립희생회(獨立犧牲會)제주지부를 결성해 제주지역 회원 4450명을 연결해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자금 모금을 주도했다.
이후 나라와 민족을 위한 시국강연을 했다는 이유로 많은 고초를 겪었다.
1926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6월 전북 김제읍교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이 무렵 주례사 중 시국발언을 하다 일제에 의해 고초를 당했다.
고 이도종 목사는 1929년 고향 제주도로 돌아와 1932년 남원교회를 개척했다.1935년 남원교회 시무 당시 지금의 제주YMCA건물 자리에 제주성경학교를 세워 제주교역자와 전도일꾼들을 양성했다.
1937년 고산교회에 부임한 이도종 목사는 1938년 4월 제주노회 신사참배 결의사건 이후 큰 환난을 당했다.
신사참배 결의를 위해 소집된 평양총회에 참석을 거부한 것이다. 평양총회에는 전국 노회 중 제누노회와 경남노회만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 목사는 목회사역에서 은퇴한뒤 고산에서 농사를 지으며 일제의 환난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이어 1945년 해방후 와해된 제주교회를 회복시키는 일에 매달렸다. 그는 중산간지역 마을의 교인들을 돌봤다. 그러다 결국 4.3사건을 겪으며 제주에서는 처음으로 목회자가 순교하는 사건이 터진 것이다
김포가현교회 교역자는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말씀 증거를 통해 “먼 곳까지 복음을 들고 찾아온 누군가에 의해 예수를 영접한 한 사람이 제주도를 복음으로 변화시켰다”고 강조했다.
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