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기금이 한진칼에 대해서만 경영참여형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대한항공은 중점관리 기업으로 지정했다. 대한항공에 대해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10%룰(단기매매차익 반환)’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1일 서울시 중구 더 플라자호텔에서 ‘2019년도 제2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국민연금의 결정은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 의결권 행사 지침) 도입 이후 첫 행보다.
박능후 장관은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대한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여부를 나눠서 보기로 했다”며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위원회에 참석한 다수는 경영진 일가의 일탈행위로 주주가치가 훼손됐다는 것에 공감했다. 최소한의 상징적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해 오너 리스크를 해소하고 주주가치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는 데도 공감했다.
다만 국민연금의 한진칼에 대한 지분보유 비율은 10% 미만이라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하더라도 단기매매차익 반환 사유가 발생하지 않아 국민연금 수익성 측면에서 부담이 적다고 판단했다.
현재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의 지분 11.56%를 가진 2대 주주고 대한항공의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은 7.34%를 확보한 3대 주주다.
한진칼 지분은 10% 이하라 ‘5%룰’이 적용된다. 이 룰은 특정 기업 지분을 5% 이상 가진 투자자가 지분이 1% 이상 변동될 경우 5일 이내에 신고하도록 한 규제다. 대한항공에 적용되는 ‘10%룰’은 특정 기업 지분을 10% 이상 가진 투자자가 지분이 1주 이상 변동되면 신고하는 제도다.
이에 기금위 산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도 지난 23일 대한항공에 대한 경영 참여 위원 9명 중 7명이 반대했다.
보건복지위원회 김승희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전문위원회 회의’ 자료를 보면 국민연금이 대한항공 주식으로 얻은 단기 매매차익은 2016년 123억원, 2017년 297억원, 2018년 49억원이다.
경영참여형으로 투자목적을 바꿀 경우 10%룰에 의해 지난 3년간 대한항공이 반환해야 할 차익은 최대 469억원에 이른다.
국민연금으로선 노후보장과 지속가능성 논란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로 대한항공이 매매차익을 토해낼 경우 오히려 기금의 안전성을 해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박능후 장관도 “10%룰을 염두에 뒀다”며 “스튜어드십 코드를 이행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국민연금의 수익성 제고다.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수탁자책임위 위원 다수가 대한항공에 대한 ‘경영참여'를 반대했는데도 정반대의 결론을 내면 기금운용의 독립성과 자율성에 역행한다는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계와 학계는 국민연금의 결정에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연세대 성태윤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은 수익이 목적이지 기업의 지배구조를 바꾸기 위한 게 아니다”라며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적절한 결론을 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향후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보완해야 할 점도 강조했다.
그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발동되려면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며 “가령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질에 대해 법원에서 적어도 1심 판결이 나온 뒤 어떻게 할 것’ 등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에 대한 국민연금의 경영권 참여가 거론되기 시작한 건 지난해 4월 조현민 전 사장의 이른바 ‘물컵 갑질' 부터다. 정부나 공기업이 경영진의 개인적 문제로 사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 정당한지도 판단이 서지 않은 상황이다.
국민연금의 이날 결정이 강성부 펀드 등 행동주의 펀드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서울시립대 윤창현 경영학부 교수는 “한진칼·대한항공 양쪽에 똑같이 경영참여를 해야지 10%룰 때문에 다른 결론을 내서는 안 된다“며 “오히려 조양호 일가의 갑질을 문제 삼는 데 행동주의 펀드의 힘이 필요해진 상황을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