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법원 “애꾸눈 종군 기자 마리 콜빈, 시리아 정부가 살해”

입력 2019-02-01 17:15
안대를 찬 마리 콜빈. 미국 워싱턴 연방 지방법원은 30일(현지시간) 콜빈 사망에 대한 책임을 물어 시리아 정부에 3억250만 달러(약 3400억원)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했다. 콜빈은 2001년 스리랑카 내전을 취재하던 중 수류탄 파편에 맞아 한쪽 눈을 잃고도 분쟁지역 취재를 계속했다.


영국 선데이타임스 소속 미국인 종군기자 마리 콜빈은 2012년 2월 22일 시리아 제2의 도시 홈즈의 미디어 센터에서 정부군의 포격을 받아 사망했다. 콜빈은 당시 정부군에 포위당한 반군을 취재하고 전쟁의 참상을 알리러 홈즈를 찾았었다.

미국 워싱턴 연방 지방법원은 31일(현지시간) 콜빈의 죽음에 시리아 정부의 책임이 있다며 3억250만 달러(약 3400억원)를 부과했다. 이 중 250만 달러는 유가족 몫이고 3억 달러는 위험에 노출된 언론인을 겨냥해 살해한 데 대한 징벌적 배상이다.

판결문에는 당시 시리아 정부군이 위성 전화 신호를 통해 기자들을 추적했다는 당시 시리아 고위관리의 증언이 담겼다. 시리아 정부군이 콜빈을 겨냥해 포격했고 그가 숨진 것을 축하했다는 전직 시리아 정보관계자의 증언도 확보됐다.

재판부는 확보된 증언을 종합해 콜빈이 시리아 정부가 시행한 ‘국가의 적들’이라는 적대적 미디어 정책의 희생양이었다고 지적했다. 시리아 내전 기간 사망한 기자만 126명에 달한다. 시리아 정부군이 콜빈을 살해하기 위해 그가 있던 미디어센터 건물을 조준 포격했다는 취지다.

바사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2016년 시리아 수도 다마쿠스에서 미국 NBC방송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아사드 대통령은 이날 마리 콜빈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 부인했다. AP뉴시스



시리아 정부는 미 법원 판결에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2016년 “콜빈은 불법적으로 홈즈에 들어가 테러리스트와 함께 있었다. 그녀에게 닥친 일은 모두 그녀가 책임졌어야 했다”고 말한 바 있다.

콜빈 유족은 2016년 아사드 시리아 정권이 고의로 콜빈을 살해했다며 워싱턴 연방 지법에 손해배상소송을 제소했다. 시리아 정부의 전쟁범죄와 관련한 첫 제소 사례였다. 결국 재판에서 승리해 시리아 정부에 막대한 배상금을 부과했지만 이를 받아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아사드 대통령은 전 세계 부동산과 사업체에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하지만 이 중 상당수가 해외 법 집행기관에 압수되거나 제재 과정에서 동결됐다. 때문에 콜빈의 가족이 시리아 정부로부터 보상금을 받으려면 오랜 기간 싸워야 할 것이라고 BBC방송은 지적했다.

영국 언론 더타임스의 일요판 선데이타임스에서 25년간 기자로 활동해온 콜빈은 1990년대 코소보, 체첸, 동티모르, 리비아 등 분쟁지역을 주로 취재했다. 2001년에는 스리랑카 내전 취재 중 수류탄 파편에 맞아 한쪽 눈을 잃기도 했다. 그는 동료들에게 ‘취재진의 어머니’ ‘애꾸눈 기자’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