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다움’ 없어도 돼… 성인지 감수성 높인 法, 안희정 구속(영상)

입력 2019-02-01 16:52 수정 2019-02-01 17:29

위력으로 자신의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54) 전 충남도지사가 2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됐다.

서울고법 형사12부(부장판사 홍동기)는 1일 오후 2시30분 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에 대한 선고 공판을 진행했다. 그는 이날 오후 2시18분경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항소심에서 (무죄를) 충분히 소명했다고 생각하느냐’ ‘항소심도 1심과 같은 결과를 예상하느냐’ ‘항소심 선고를 앞둔 심경이 어떻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이날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의 판결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1심 재판부가 수행비서 김씨에게 ‘피해자다움’이 없다는 이유로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면, 2심 재판부는 “반드시 피해자다울 필요는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놨다.

뉴시스

1심 재판부는 성관계가 있은 다음 날 안 전 지사가 좋아하는 순두부집을 검색하거나 지인에게 안 전 지사에 대한 충성이 담긴 메시지를 보냈다는 점을 근거로 성폭력 피해자라면 응당 느껴야 할 고통이나 괴로움 같은 피해자다움이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김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봤다.

이후 여성계를 포함해 법조계 내부에서는 1심 재판부 판결에 ‘성인지 감수성’이 부재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현행법상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죄’의 경우 ‘피해자의 자유 의사를 제압하는 유형적·무형적인 힘’과 ‘폭행·협박 뿐 아니라 사회·경제·정치적 지위나 권세’를 포함한다. 위력의 범위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성인지 감수성은 대법원도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이다. 지난 4월 대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항소심 과정에서는 1심 판단서 제기된 오류를 되돌려야한다는 주장이 거셌다.



2심 재판부는 성인지 감수성을 높인 판결을 내놨다. 판결문에 “피해자답지 않다고 해서 진술 신빙성을 배척할 수 없다. 안희정 측 주장이 피해자를 정형화한 편협한 관점”이라고 적었다. 이어 “수행비서로서 업무를 성실히 수행한 피해자의 모습이 실제 간음 당한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다움이 무죄 판단의 근거가 될 수 가 없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안 전 지사에 대해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안 전 지사는 2017년 7월 29일부터 올해 2월 25일까지 업무상 상하관계를 이용해 수행비서 김씨와 4차례 성관계하고 추행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지난 8월 1심은 안 전 지사와 김씨 사이에 업무상 위력이 행사될 수 있는 관계였다고 보면서도 강제성은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박민지, 최민석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