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세제개편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앞서 불거진 증권거래세 이슈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압박으로 ‘기획재정부의 반대’라는 문턱을 어느 정도 넘어섰다. 정치권과 금융투자업계는 다음 단계로 여러 개의 펀드 손익을 합산해 과세하는 방식의 과세체계 개편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자금이 부동산으로만 쏠리는 현상을 막고, 장기투자 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투자협회는 올해 중점 과제 중 하나로 자본시장 과세체계 개편을 꼽는다.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은 지난달 31일 ‘신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증권거래세 폐지 또는 인하와 펀드의 손익 통산 등 (투자 관련) 환경이 국민의 장기투자 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본다”며 “(자본시장 과세체계 관련해) 세제실, 국회에 건의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협회 차원에서 정치권과 정부를 설득해나가겠다는 뜻이다.
구체적 개편 방안으로 펀드 손익 통산이 꼽힌다. 펀드 손익을 통합해 과세하면 A펀드에서 1억원 손실을 보고 B펀드에서 1억원 이익을 거뒀을 때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총 손익이 0원으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현재는 손실에 대한 고려 없이 이익에는 세금을 부과한다.
손실 이월공제도 함께 언급된다. 금융상품 손실에 대해 이월공제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지난해 손해를 본 투자자가 올해 이에 미치지 않는 약간의 이익을 실현했더라도 세금을 내야 한다.
그동안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과세 체계에 꾸준히 불만을 제기해왔다. 대표적으로 손실을 봐도 내야 하는 증권거래세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는다. 일부 대주주에게는 양도소득세와 함께 부과되기 때문에 이중과세 지적도 제기된다. 자본시장에서 벌어들이는 이익에는 철저히 과세가 이뤄지고 있지만, 손실을 볼 때는 별다른 보호책이 없다는 목소리도 높다.
미국, 일본 등 금융선진국은 어떨까. 미국은 손실 이월공제를 무기한으로 허용하고 있다. 손실을 만회할 때까지 기한 없이 세금을 면제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투자자를 보호하는 동시에 장기투자를 유도한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일본도 모든 금융상품의 손익을 통산해 세금을 내도록 하고 있다. 만약 손실이 나는 경우 3년까지 이월공제를 해준다.
증권거래세율도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편이다. 미국과 일본 독일에서는 증권거래세를 걷지 않는다. 증권거래세를 내야 하는 중국과 홍콩 대만도 한국보다 세율이 낮다.
자본시장 세제개편은 증권거래세 인하를 시작으로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실무진 차원에서 증권거래세를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최근까지 세수 문제 등을 들며 증권거래세 폐지·인하에 불가 방침을 고수해오다가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금융투자협회는 제도 개선 이후 당장은 세수가 줄어들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1999년 증권거래세를 폐지한 일본도 증권거래세율이 낮아지면서 세수가 줄었지만 이후 주식시장이 활성화되면서 2005년부터는 세수가 정상화됐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