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상 에세이] “오예, 유럽여행이다!”

입력 2019-02-01 12:59

강남 카리스마 교회의 대학부 담당 교역자 카오스 전도사는 학생들을 인솔해서 종교개혁지 탐방을 다녀오라는 당회의 지시를 받았다.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유럽을 가볼 기회가 생겼다. 인솔자 여행비는 교회에서 전액 부담하고 청년들은 30%를 지원한다고 한다. 신청자를 받아보니 주보에 광고를 하지 않았는데도 순식간에 열 다섯 명 정원이 찼다. 후덜덜. 모두가 기대 가득! 계단에서 마주치는 청년들은 벌써부터 상기된 표정이다.

"저 완전 기대됨요!"
"근데 어디로 가요? 에펠탑도 올라가요??"
"프라하 가나요? 프라하? 야경이 쪈다던데~"
"프라하가 어디야? 프랑스야?"
"아니거든, 체코거든. 체코. 체코의 수도. 에휴."
"워~ 프라하가 도시 이름이었어?? 대박!!"

듣자 하니 어째 좀 동상이몽 느낌이다.

"저기, 얘들아, 캄다운. 아직 일정표 안 나왔어. 그리고 이건 놀러 가는 게 아니잖아. 종교개혁지 탐방이거든?"

그러고보니 나에게도 정보가 너무 없다. 갑자기 근심이 몰려온다. 음... 뭐부터 해야하지? 다른 교회에서 여행사 통해서 다녀왔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딜, 어떻게, 얼마에 다녀왔는지는 모른다. 얼른 여기저기 좀 알아봐야 되겠다. 여행사를 선정하고 일정과 예산을 짜서 올릴 일을 생각하니 마음이 바쁘다. 내 마음을 읽으셨을까? 평소 눈치 빠른 모 집사님이 지나가던 나를 붙잡고 인상을 찌푸리신다.

"이야기 들었어요. 저번에 종교개혁 500주년이라고 남여전도회에서 여행사 패키지로 다녀왔는데, 그거 완전 돈 낭비 시간 낭비였어요. 맨날 차만 타고, 졸다가 깨면 버스에서 내려서 똑같이 생긴 성당만 계속 보다 왔네요. 어디가 어딘지 지금 기억에 하나도 안 남아요. 식사도 그렇고, 새벽같이 버스 타러 나오라 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다들 무리해서 감기 걸리고. 최권사님 무릎 인대 늘어나고, 이런 걸 교회에서 뭐하러 예산 써서 가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글쎄, 대학생들은 좀 나으려나? 이번엔 기획을 잘 좀 해보세요. 또 그렇게 갈 거면 차라리 가지 마시고."

뜨끔. 겁이 덜컥 난다. 모두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지만 대안이 없다. 어찌하오리까? 집에 와서 패키지 상품을 하나씩 살펴보는데, 종교개혁지 탐방 상품은 죄다 비슷하고 주로 독일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루터가 태어난 곳, 세례 받은 곳, 벼락 맞을 뻔해서 회심한 곳, 어디 숨어 있던 곳, 마지막에 설교한 곳, 사망한 곳 등등... 한 인물의 일생을 따라 순례를 하는 모양인데, 나름 의미는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뭐하러 이런 데를 굳이 다 찾아다녀야 하나 의문이 든다. 우리 청년들이 좋아할까 싶고.


▲ 종교개혁지 탐방을 검색하면 수많은 내용이 뜨긴 하는데 대체로 내용은 거기서 거기다. 가장 큰 문제는, 그 장소에 왜 가는지, 가서 무엇을 보는지, 확신이 안 선다는 것이다. 가면 과연 좋을까? 차라리 그 돈으로 더 잘 알려진 관광지에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에이, 순 독일만 가네! 다 모르는 동네고... 전도사님, 저는 독일 별로 관심 없는데, 다른 데 가면 안 돼요? 지중해 쪽엔 뭐 없어요??"

내가 들고 다니던 여행사 일정표 몇 개를 뒤적거리던 한 청년의 반응에 어이가 없었다.

"다른 데라니, 여행 컨셉이 종교개혁인데 루터의 동네를 안 본다고? 이런 여행은 이렇게 가면서 공부도 하고 루터의 발자취와 그리고..."

"그래도 해외여행인데 뭐랄까 재미 요소도 있어야져. 겸사겸사."
"그 돈 들여서 유럽까지 가는데. 또 언제 가보겠어요, 코스가 너무 따분해 보여요."
"저희 이거 마지막 기회라구요! 이제 3학년이라 내년부터 장난 아니거든요?"
"패키지 말고, 우리 자유여행으로 가면 안 돼요? 패키지는 나중에라도 갈 수 있잖아요."

집단 반발이다. 게다가 자유여행이라니. 그렇잖아도 부담인데. 하긴, 여행사가 제시한 코스는 내가 봐도 좀 그렇긴 하더라마는.

"알았다. 알았어. 그럼 다같이 만들어보자! 노트북 갖고 와."

구글링을 통해 루터 외에도 칼뱅, 쯔빙글리 등이 활동했던 도시가 근처에 더 있음을 알아냈다. 2주에 걸쳐 저녁마다 모여서 밤잠을 줄여가며 나름대로 코스를 짜봤다. 일정이 빡빡해서 하루에 두 세 도시를 방문하긴 하지만, 독창적이지 않나? 그런데 회계를 맡은 자매가 우리가 짠 코스를 메일로 받아보고 한 마디 한다. '저기요, 그렇게 하면 비용이 두 배에요. 스위스가 숙소가 좀 비싸야죠. 우동 한 그릇도 10유로씩 하구요.' 급 시무룩. 어쩌라고?

답이 안 나오는 상태로 몇 주가 흘렀다. 일정표를 이렇게도 만들어보고 저렇게도 만들어보며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당회에서 부르셨다. 지금 뭐 하는 거냐고. 교회 예산 가지고 함부로 책임지지 못할 일을 벌이면 안 된다고. 심지어 '종교개혁지 탐방하는데 스위스를 왜 가느냐'고 혼.났.다. (응?) 나는 너무 답답해서, "스위스는 종교개혁의 중심지거든요!"라고, (마음 속으로) 소리치고 조용히 나왔다.

아. 스트레스 스트레스. 그냥 가지 말까. 우울하고 막막하다. 종교개혁, 말만 들어도 짜증이다.

지금까지 지어낸 이야기를 한 편 읽으셨다. 픽션이긴 하지만, 낯설지 않다. 지금 이 순간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실화일 것 같은 가상이다. 사실 그동안 많은 교회에서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핵심은 정보 부족이다. 우리는 종교개혁의 후손이지만 종교개혁을 너무 몰랐고, 그래서 종교개혁 탐방이라는 '버킷리스트'의 한 줄에 체크 표시를 하면서도, 그저 유럽여행 다녀온 것과 차별화가 없었다. 여행사나 현지 가이드들의 준비 부족도 한술 보탠다. 물리적으로 가능한 이동 거리와 단골 숙소, 식당은 정해져 있으니, 기존 상품에 종교개혁이란 이름만 끼얹어서 적당히 재구성할 뿐이다. 기독교 문화,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말은 많지만, 앞에 기독교라는 단어를 붙였을 뿐 그게 뭐가 좋은지 모르는 것과 백퍼센트 똑같은 상황이랄까.


▲ 대충 어디를 가면 된다더라 하는 정보는 있지만, 왜 꼭 그곳인지, 거길 가서 무엇을 보면 좋단 말인지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 막상 이러이러한 것이 있다고 소개하면 시큰둥한 반응이 대부분이다.


종교개혁은 단순히 '루터가 교회의 타락에 열받아서 밤중에 몰래 대자보를 갖다 붙인 사건'이 아니다. 이것은 무려 200여년에 걸쳐 유럽 대륙 전체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의 연속이자, 수천 명에 달하는 종교개혁자들의 피와 땀이 물든 역사의 진보를 뜻한다. 따라서 종교개혁지 탐방이라는 말 자체가 본래 한두 번의 탐방으로 성립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종교개혁 이후 수백 년이 이미 흘렀다. 그 장소, 그 땅은 그 뒤로 수많은 전쟁과 산업 발전기의 변화를 겪어냈다. 종교개혁 시절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유산들은 대부분 훼손되거나 아예 실종되었다. 따라서 내용을 모르고 그냥 갔다가는, 이미 패스트푸드 식당으로 변한 건물의 문 앞에서 허무한 발걸음을 돌리게 된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그 모든 순간이 시간과 돈이다. 문제는 우리들 대부분에겐 시간도 없고 돈도 없다는 사실!

그래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다 볼 수는 없고, 골라야 하는데, 당연히 우리에게 의미가 크고 깊은 곳 위주로 골라야 한다.

"종교개혁지 탐방, 어디로 가서 무엇을 볼 것인가" 시리즈는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 글은 종교개혁 탐방을 떠나려는 분들께 최종적이고 완벽한 해답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이대로 그냥 따라하시면 다 됩니다요~"식의 여행정보를 주려는 것도 아니다. 특정 여행상품을 홍보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적어도 어디를 왜 가는지 스스로 알고 갈 수 있도록, 여행 코스를 잡을 때 자신 있게 "저는 여기, 그리고 여기를 꼭 가보고 싶어요! 왜냐하면..."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말하자면, 종교개혁지 탐방의 WHY, WHAT, HOW가 되겠다.

앞으로 우리는 종교개혁과 관련하여 한국 교회에 아주 중요한 장소(도시)를 약 20개 선정할 것이다. 그리고 그 장소에 왜(WHY) 가는지, 가서 무엇을(WHAT) 보고 무슨 생각을 할 것인지, 마지막으로 어떻게(HOW) 접근하고 돌아보면 좋을지를 소개하려 한다. 그런데 사람마다 쓸 수 있는 비용과 시간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전체 여행 기간에 따라 달라지는 현실적인 동선을 감안해서 A안 B안 C안 등을 제시하려 한다. 스무 곳을 다 가려면 3주 이상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서도 중요도에 따라 다시 압축해서 코스를 짠다면 10일 코스도 가능하다. 즉, 열흘 내로 갈 수 있는 코스와 2주, 3주에 갈 수 있는 코스를 각각 다르게 짜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시리즈는, 종교개혁의 가치와 역사를 여행을 통해 간접 체험하는 일에 집중하려고 한다. 그래서 종교개혁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의미가 깊지만, 일반적인 여행사 가이드는 그닥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곳을 향해 주로 발길을 디딜 계획이다.

우리네 종교개혁지 탐방 문화가 지금보다 조금은 더 발전하기를 기대하며!

황희상 (특강 종교개혁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