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노란색 나비 모양의 깃발 수백 개가 바람에 휘날렸다. 검은색 옷차림을 한 행렬은 이곳에 멈춰 서서 잠시 묵념을 했다. “할머니 보고 계시죠?” 추모자의 말에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색색깔의 나비에 둘러싸인 그림 속 김복동 할머니가 환하게 웃었다.
김 할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영결식이 이날 일본대사관 앞에서 엄수됐다. 김 할머니의 시신은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이 엄수된 후 생전에 거주했던 평화의 우리집과 서울광장을 거쳐 이곳으로 왔다. 영결식은 추모영상과 추모사, 호상 인사 등의 순서로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체감온도 영하의 날씨에도 1000여명이 영결식에 참석해 김 할머니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현장에서 나눠준 노란 나비 깃발을 모두 손에 꼭 쥐었다.
영결식에 참석한 이들은 “할머니의 뜻을 우리가 이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권미경 연세대의료원노조위원장은 추모사에서 “저희가 잘 싸워서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겠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할머니는 강인한 여성인권운동가의 모습을 보여주셨다”며 “병상에 누워 있다가도 재일조선학교 얘기가 나오면 눈을 뜨셨고, 전신에 암 덩어리가 퍼져 있을 때도 수요 시위에 나가셨다”고 했다. “견딜 수 없는 복통에 입원하던 날, 대통령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맑은 정신에 일본사죄 받게 해달라고 똑똑히 얘기할 수 있게 진통제를 맞혀 달라고 하셨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위안부 문제를 다룬 연극 ‘빨간시’를 연출한 이해성 작가도 “다시는 그런 고통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살다 가신 할머니의 숭고함을 마음깊이 새기겠다”고 말했다. 권 위원장에 이어 추모사를 맡은 그는 “할머니는 분노와 증오에 휩싸인 제 마음을 열어주셨다”며 “그곳에서는 마음껏 사랑하시고 사랑 받으시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추모사를 듣던 이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멀찍이서 영결식을 지켜보던 이모(74)씨는 “너무 죄송하다”며 눈물을 내비쳤다. 장갑 낀 손으로 노란 나비 깃발을 꼭 쥐고 있던 이씨는 “생계가 여의치 않다 보니 수요 시위에 한 번도 오지 못했다”며 “살아계실 때 도와드리지 못한 게 평생 한으로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와 동생의 손을 잡고 이곳을 찾은 가이안(14)양도 목이 멘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수요 시위에서 김 할머니를 본 적이 있다는 그는 “이제 훨훨 날아가서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영결식은 노란 나비 깃발을 흔드는 순서를 마지막으로 마무리됐다. 생전에 김 할머니는 “나 갈 때 잘 가라고 손이라도 흔들어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가 “모두 노란 나비를 흔들어 달라. 28년 동안 함께했던 이 자리에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해드리자”고 하자 노란 나비 물결이 일본대사관 앞 도로를 뒤덮었다.
김 할머니는 충남 천안 망향의 동산에 안치될 예정이다.
이재연, 최민석 기자 jay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