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 문항 15개가 법원 판단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 교육시민단체가 수능 난도가 고교에서 배우는 수준을 넘겨 교사도 풀지 못할 정도로 출제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예고했다. 시험 난도가 법정 다툼으로 번진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법원 판단과 별개로 소송 진행 만으로도 올해 수능 난도에 영향을 끼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지난해 수능 국어와 수학 영역을 분석해보니 정상적인 고교 과정을 이수해도 풀 수 없는 ‘초고교급’ 문항이 15개로 나타났다. 이과형 수학인 수학 가형에서 7개, 문과생들이 주로 응시하는 수학 나형 5개, 국어 3개였다. 지난해 12월 17일부터 지난 1월 25일까지 현직 교사와 교육과정 전문가 10명이 살펴본 결과다. 지난해 논란을 일으켰던 국어 31번 말고도 ‘킬러 문항’여 여럿 있었다는 주장이다.
수학 가형에선 14, 16, 18, 19, 20, 29, 30번이 지목됐다. 특히 30번은 악명 높은 도쿄대학 본고사 문제와 흡사하다고 주장했다. 풀이 시간까지 고려하면 한국 수험생이 도쿄대 지원자보다 훨씬 가혹한 조건이다. 사교육걱정은 “수능 30번 문제와 비슷한 기출문제는 일본 도쿄대 본고사 문제 정도”라면서 “현직 교사들에게 수능 30번 문제를 주고 시간을 무제한으로 주면 절반 정도가 맞힐 것이지만 30분 내에는 절대 풀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능 수학은 100분에 30문항을 풀어야 하는데 이런 초고난도 문항이 곳곳에 섞여 있으니 수능 수학이 도쿄대 본고사보다 가혹한 조건이란 주장이다. 더구나 고교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는 표현이 나왔다고 봤다. 수학 나형은 17, 20, 21, 29, 30번이 고교 교육과정을 넘어섰다고 주장했다. 국어는 11, 31, 42번이다.
사교육걱정은 학교 수업만으로 대비하기 어려운 문항이 출제돼 공교육을 믿었던 학생·학부모의 피해가 입증됐으므로 이달 중으로 국가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하기로 했다. 수능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능의 성격 및 목적’으로 “고교 교육과정의 내용과 수준에 맞는 출제로 고교 학교교육의 정상화 기여”라고 밝히고 있었다. 교육부는 평가원에 사교육걱정이 제기한 15개 문항이 고교 교육과정을 넘어섰는지 다시 검토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가원은 수능 이후 공개한 교육과정 근거에서 고교 교육과정을 넘어서지 않았다고 주장했었다.
일각에선 이런 논란이 올해 수능 난이도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예상한다. 평가원이 지난 수능 채점결과를 발표하면서 국어 31번 등 초고난도 문항이 지나치게 어려웠다고 사과했기 때문에 이번 논란과 맞물려 난도가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와 평가원은 다음달 지나치게 어렵게 내지 않으면서도 변별력을 갖출 수 있는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하지만 수능 난도 조절은 ‘신의 영역’으로 불릴 정도로 쉽지 않다. 섣불리 난도를 낮추려고 하다가 반대로 ‘물수능’ 으로 변별력 대란이 빚어질 수 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