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을 통해 본 드루킹과 김경수 관계,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입력 2019-02-03 05:04


징역 2년 실형으로 법정 구속된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1심 선고 결과가 설 연휴 정국을 달구고 있다. 현직 지사의 이례적 법정 구속이라는 결과 자체가 주는 파장도 크지만, 충격의 핵심은 김 지사가 ‘드루킹’ 김동원 일당의 댓글 여론 조작을 “최소한 ‘묵시적으로’ 승인하고 독려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는 재판부의 결론에 있다.

특검 수사 마무리때만 해도 김 지사의 관여 혐의를 명확히 밝힐 ‘물증’ 없이 드루킹 김씨와 그의 일당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회원들의 진술과 간접 정황 증거들에 의존한 무리한 기소라는 비판이 있었다. 공판 과정에서도 김씨 일당의 주장이 일방적이거나 허황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컸다. 그런 분위기를 바탕으로 한 세간의 예상을 재판부가 완전히 뒤집게 된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재판부 “김 지사-드루킹은 상호 의존하는 특별한 협력관계” 판단, 왜?

판결문을 들여다보면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성창호)가 김 지사와 드루킹 김씨의 관계, 그리고 대선에서의 역할 관계를 특히 유념해 본 것을 알 수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피고인(김 지사)과 김동원은 피고인(김 지사)은 더불어민주당의 정권 창출과 유지를 위해, 김동원은 경공모가 추구하는 경제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해 상호 도움 상호의지 하는 특별한 협력 관계”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같은 인식은 김 지사가 김씨가 주고받은 메시지 등을 통해 김씨의 댓글 조작 범행을 단순히 인식한 것을 넘어 “김 지사가 직접 관여하고 그 실행행위 일부를 분담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재판부는 김 지사가 드루킹 일당인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사무실을 방문한 횟수, 김 지사가 김씨로부터 전달 받은 브리핑 내용 등과 함께 김씨가 대선 과정에서 경인선 조직을 운영하며 벌인 활동이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준다고 판단했다. 특히 논란의 ‘킹크랩 시연회’ 이후 김 지사가 세번째로 경공모를 방문해 이뤄졌다는 2017년 1월 10일의 간담회는 재판부에 결정적인 인식을 심어준 것으로 보인다.

간담회가 있었다는 1월10일 밤 김씨는 경공모 핵심 측근 인사들과의 텔레그램 전략회의팀 채팅방에 “우리측 거사에 방해된 공격이 있을 경우 김경수가 책임지고 방어해주겠다 다짐받음”이라는 내용을 담은 ‘김경수 미팅 정리’를 올렸다. 재판부는 이 내용을 증거로 인정했다. 김씨 측의 일방적 주장이며 사실이 아니라는 김 지사측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씨가 불과 몇시간 전에 있었던 미팅 내용을 허위로 작성해 올린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는게 당일 메신저의 신빙성을 인정한 이유였다. 텔레그램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인 재판부는 이후 수사·재판 과정에서 김씨 측근들이 “김 지사가 경공모 회원들과 대화를 하면서 수사가 들어오면 책임 지고 방어해주겠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고 진술한 것도 “객관적인 텔레그램 메시지 내용과 상당히 부합하다”며 받아들였다.

그날에 앞서 김씨가 김 지사에게 전달한 ‘공동체(경공모)를 통한 재벌개혁계획보고’ 문서도 재판부 판단에 결정적 영향을 줬다. 판결문에서 ‘재벌개혁계획보고’ 문서는 재판부 판단 부분에서만 20여차례 등장한다. 재판부는 김씨가 문제의 간담회 며칠 전인 1월 6일 김 지사에게 이 문서를 전달했고, 이후 문재인 당시 대표 기조연설문에 그 내용이 일부 반영됐다는 점을 크게 주목했다. 재판부는 “김 지사가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유력 정당의 대표이자 차기 대통령 후보로 평가받던 문재인 대표의 측근으로서 기조연설문에 위 재벌개혁계획보고의 내용을 반영되게 했다는 것은 일반적인 지지자들로부터 정책에 관한 의견을 단순히 청취한 것에 그쳤다고 평가하기는 힘들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해당 문건에서 언급한 표현들을 근거로 김씨가 단순한 지지자를 넘어 ‘특별한 존재’가 되고자 했다고 봤다. 김씨는 이 문건에서 ‘경공모는 비선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문후보님의 경공모 회원들에 대한 비공식적인 따뜻한 언급이 있다면 아마 경공모의 수천명 회원들은 용기백배해서 경선과 대선에 임할 것이며 신명을 다 바쳐서 경제시스템을 바꾸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데 매진할 것’이라고 써놨다. 또 ‘문후보께서 공약에 재벌개혁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넣어주셔야 함. 재벌의 순환출자구조 해소와 지배구조의 변화요구, 소액주주의 권한과 전자투표제 활성화 등을 반영한 개정상법과 시행령의 빠른 통과를 언급해주셔야 함’ 등 구체적 건의사항도 담아놨다.

재판부는 김 지사가 이 같은 내용이 쓰인 문건을 받은 만큼 김씨의 의도를 알았으니 둘의 관계는 일반적 지지자와 정치인의 관계를 넘어섰다고 본 듯 하다. 재판부는 “지지자들로부터 정책에 관한 의견을 청취한 것”이라는 김 지사의 주장과 달리 “위 문건 내용을 보고받은 것을 보면 김씨를 포함한 경공모가 피고인 또는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단순 지지세력 이상의 관계에 있었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판결문 속 ‘문재인’ 이름은 여러번, ‘직접 관련’ 언급은 없어

이 지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판결문에 등장한다. 문제의 문건 내용이 담겼다는 기조연설 때문이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문 대통령은 헌정기념관에서 기조연설을 했는데 이 날은 김 지사가 경공모 사무실을 방문해 “방어해주겠다”는 발언을 했다는 1월10일 간담회 날이다. 김 지사는 문 대표 기조연설문 발표 직후 시그널 비밀대화방을 통해 김씨에게 대통령 기조연설문을 전송, “오늘 기조연설 반응이 어떤가요”라고 물었다. 재판부는 이것이 김 지사가 경공모 회원들의 반응을 물은 것으로 판단했다. 이날 저녁 김 지사가 경공모 사무실을 방문해 간담회를 가진 것도 그 일환으로 본 것이다. 나아가 이 같은 행위가 경공모 측에 김 지사가 자신들이 추구하는 경제민주화가 달성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했고, “김동원이 이 사건 범행에 나아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독려하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다만 문 대통령의 직접 관련성은 판결문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이름은 기조 연설과 김씨가 댓글 작업을 한 기사 목록의 제목 등때문에 등장한 정도다. 재판 과정에서 드루킹 일당의 진술 때문에 한 차례 제기됐던 문 대통령이 경공모 활동을 보고받았는지 여부는 아예 판단 대상이 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김씨나 김씨가 이끈 경인선 조직을 만났다거나, 김 지사를 통해 댓글 조작 의혹 관련 직접 개입한 정황도 드러난 것은 없다.

드루킹 김씨와 김 지사, 나아가 현 정권과의 관계를 ‘매우 특별하게’ 본 1심 재판부의 판단은 김 지사의 유·무죄 판단과 함께 항소심에서 다시 다뤄질 전망이다. ‘정권의 비선’을 꿈꾼 ‘드루킹’의 요구와 계속된 보고 등이 정말 김 지사와의 ‘상호적’ 관계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어느 한 쪽의 ‘일방적’ 적극성에 의한 것으로 볼 지 등은 중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