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언제 하니” “연봉은 얼마니”…지나친 간섭에 명절이 두려운 젊은이들

입력 2019-02-03 05:00
직장인 이시혁(35)씨는 이번 설 연휴 때 친척 집에 가지 않을 생각이다. 지난해 추석 때 겪은 일 때문이다. 이씨 어머니가 큰집에 모인 친척 10여명에게 “시혁이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말하자마자 질문이 쏟아졌다. “나이가 몇 살이냐” “어느 대학을 나왔냐” “직업은 뭐냐”고 하더니 급기야 “부모님 직업은 어떻게 되냐”라는 말까지 들었다. 이씨는 2일 “올해는 분명 ‘언제 결혼할 거냐’ ‘결혼할 생각은 있냐’고 꼬치꼬치 물을 것이 뻔해 (친척집에) 안 갈 계획”이라고 토로했다.

지난해 말 결혼한 권모(32)씨는 며칠 전부터 가슴이 답답하다. 올해부터는 장인·장모님에게 드릴 용돈도 챙겨야 하는데 회사로부터 “올해는 설 상여금이 없다”는 말을 들어서다. 결혼 후 처음 맞는 명절이라 체면치레를 위해서라도 용돈은 드려야 한다는 것이 권씨 생각이다. 권씨는 “아쉽지만 게임기를 사려고 모은 비상금을 쓸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미혼자와 기혼자를 막론하고 성인 절반 이상은 명절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혼자는 어른들 잔소리에, 기혼자는 부모님·친척들에게 줄 용돈과 선물 준비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구인·구직 중개업체 ‘사람인’이 최근 성인 1004명을 상대로 ‘설 스트레스 여부’를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인 53.9%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다.

미혼자가 꼽은 스트레스 원인 1위는 ‘어른들의 잔소리’(56.4%, 복수응답)였다. 가장 듣기 싫은 말로는 ‘결혼은 언제 하니’(26.3%)를 꼽았다. 명절 잔소리가 사회적 문제로 제기된 지 꽤 오래됐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어 ‘근황을 묻는 과도한 관심이 싫어서’(55%) ‘용돈·선물 등 많은 지출이 걱정돼서’(37%) ‘친척들과 비교될 것 같아서’(32.8%) 순이었다.

기혼자가 선택한 설 스트레스 원인 1위는 ‘용돈·선물 등 많은 지출이 걱정돼서’(57.9%, 복수응답)였다. 권씨는 “양가 부모님께 각각 20만원씩 드려도 40만원”이라며 “평범한 월급쟁이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돈”이라고 말했다.

‘근황을 묻는 과도한 관심이 싫어서’라는 응답도 22.1%에 달하며 3위에 올랐다. “연봉은 얼마니” “아이는 언제 낳을 거니” “애가 공부는 잘하니” 등 명절만 되면 듣는 질문에 기혼자들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기혼자들이 올 설에 가장 듣기 싫은 말은 ‘월급은 얼마야?’(17.3%)였다.

조사 대상의 절반 가까이는 명절 잔소리 때문에 고향에 가지 않거나 가족모임을 피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49.4%가 ‘가족·친지들의 듣기 싫은 말 때문에 명절 귀성이나 가족모임을 피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명절에 가족 또는 친척과 다툰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이들도 29.9%나 됐다. 가족을 만나 정을 나누고 화합을 다지는 명절의 의미가 오히려 지나친 간섭 때문에 퇴색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입시와 취업, 결혼 등 모든 것이 쉽지 않은 청년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현재 20~30대는 기성세대들보다 더 치열한 경쟁을 하며 살고 있는 세대”라며 “이런 차이를 이해한 뒤 위로든 격려든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결국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