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도시’ 베니스는 왜 ‘벌금의 도시’가 되었나

입력 2019-02-05 05:00
지난 2017년 베니스 앞바다에서 주민들이 작은 보트를 타고 바다에 나가 대형 크루즈선의 입항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cnn 캡처

‘물의 도시’ 별명을 가진 이탈리아 도시 베니스는 요즘 ‘벌금의 도시’로 불린다. 관광객들이 베니스에서 ‘상스러운’ 행동을 할 경우 최대 500유로(약 63만원)까지 벌금이 부과된다. 그런데 이 ‘상스러운’ 행동이 길거리에서 음식물을 섭취하거나 상의를 벗고 있는 것, 자전거를 타는 것, 도로나 계단에 앉는 것 등 관광객이라면 흔히 하는 행동들이다. 지난해 9월 베니스 의회가 이 조례를 제정한 것은 관광객 때문에 지역 주민이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베니스 의회는 또 지난해 12월 당일치기 여행객에 대해 비수기엔 2.5~5유로, 성수기엔 10유로 입장료를 받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그동안 베네치아 입항하는 배들은 입항세, 호텔에 숙박하는 여행객은 숙박세를 냈었다. 이번에 당일치기 여행객에 대해서도 세금과 유사한 입장료를 받기로 한 것이다. 다만 실제 시스템 구축까지는 1~2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

123개의 섬과 200여 개의 운하로 이뤄진 베니스는 나폴레옹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 극찬했던 산마르코 광장을 비롯해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자 문화유적지다. 베니스를 찾는 관광객은 2018년 기준으로 연간 3000만명으로 집계됐다. 관광도시로 알려진 베니스가 오버투어리즘(과잉 관광)에 급격히 예민해진 것은 2012년 항구를 정비해 대형 크루즈선이 정박할 수 있도록 하면서부터다. 당시만 해도 베니스 시당국은 대형 크루즈선의 정박으로 관광수입이 크게 늘어나 도시 재정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 2016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자전거도로 앞에 표지판에 '집에 돌아가라'라는 글이 적혀 있다. AP뉴시스

하지만 도시의 수용능력을 벗어나는 관광객들이 몰려들자 주민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에어비앤비 등 관광객 대상 숙박업이 늘어나면서 실제 거주하는 주민들은 지나치게 오른 집세에 고통을 겪게 됐다. 여기에 관광객들이 남기는 쓰레기와 각종 소음 문제도 불거졌다.

특히 베니스의 경우 갯벌 위에 나무를 박아 조성한 물 위의 도시인만큼 수로가 도로인 셈인데, 관광객 급증으로 수로의 용량을 크게 웃도는 배들이 오가는 탓에 교통체증이 심해지고 사고도 빈번해졌다. 대형 크루즈의 경우 대기오염은 물론 약한 지반을 붕괴시키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주민들은 2013년 6월 3일간 운하와 바다에서 작은 배에 올라 “관광객은 돌아가라”며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이런 반대 시위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일부 주민은 대형 크루즈의 입항을 막기도 한다.

베니스 시 당국은 처음엔 주민들의 항의를 그다지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하지만 베니스를 떠나는 주민들이 매년 늘어난 것은 물론 기반시설 훼손에 따른 보수와 쓰레기 처리 등에 관광수입 못지 않은 예산이 소요되자 뒤늦게 관광세로 대표되는 세금 도입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1955년 17만 5000여명이었던 인구는 2017년 5만4000명 이하로 급감한 뒤였다.

‘오버 투어리즘’ 때문에 관광객에게 세금과 벌금을 부과하는 도시는 베니스만이 아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프랑스 파리, 그리스 산토리니 등도 숙박요금에 체류세 명목의 관광세를 매긴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는 관광세 인상 외에 하루 입장객 수를 대폭 줄이기로 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는 베니스처럼 관광객 대상의 벌금도 도입했다. 피렌체는 지난해 9월부터 우피치 광장 등 관광객이 몰리는 거리 4곳에서 음식물을 섭취하면 150~500유로 사이의 벌금을 내도록 했다.

지난 2017년 8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주민들이 인간 사슬을 만들어 관광객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관광객 때문에 집세가 인상하는 등 도시 거주환경이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AP뉴시스

오버 투어리즘이 심각해지면 항의시위를 넘어 주민들이 관광객에게 적대감을 표현하거나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투어리즘 포비아’ 현상까지 발생한다. 바르셀로나, 마요르카, 팔마 등 스페인의 유명 관광도시에서는 2016년부터 관광객이 몰리는 매년 여름만 되면 일부 주민들이 관광지에 페인트를 뿌리고 관광버스의 타이어를 터뜨리는 등 행동에 나선다. 좀더 과격한 주민들은 관광객에게 분뇨를 투척하고, 호텔 창문을 부수기도 한다.

오버 투어리즘은 유럽의 일부 인기있는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다. 인도 타지마할, 일본 교토, 인도네시아 발리 등도 심각한 오버 투어리즘 때문에 관광세를 인상하거나 새롭게 도입하고 나섰고 관광객 수를 제한하고 나섰다. 심각한 환경 훼손으로 지난해 6개월 동안 문을 닫았던 필리핀 보라카이는 재개장 후 하루 1만9000명으로 관광객 수를 제한했다.

오버 투어리즘은 지난 10년간 국제적으로 관광시장의 급성장에 따른 부작용이다. 중산층이 증가하고 삶의 질이 향상하면서 관광인구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중국인 해외여행 확산(2017년 1억4500만명)과 저가항공 및 공유숙박 플랫폼에 따른 관광비용 감소 등이 맞물린 것이 기폭제가 됐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에 따르면 2017년 세계 관광인구는 13억 명을 넘어섰다. 이제 오버 투어리즘 문제는 국제적인 문제가 됐다. 관광객과 주민이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관광산업은 지구촌의 과제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