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에서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의 이야기로 여성 서사의 시간적 폭이 커지고 있다. ‘82년생 김지영’(민음사)로 대표되는 현재 여성의 서사가 집중적인 조명을 받은 후 이 세대 여성의 어머니나 그 할머니가 겪은 담은 책이 주목받고 있다. 페미니즘 열풍 속에 이 시대 여성의 삶에 대한 관심이 역사 속의 여성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는 분위기다.
최근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1926~2019)가 숨지면서 그가 생전에 남긴 증언집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현대문학)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된다. 소설가 김숨이 기록한 이 책을 통해 김복동 할머니의 생전에 남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김 할머니는 자신이 살아온 세월의 고통과 투쟁에 나선 용기를 담담하게 얘기한다.
예순을 넘긴 할머니가 용기를 내 위안부 피해를 고백했을 때 가족들은 발을 끊었다. 그는 “다들 모른다고 말해도 나는 알아. 내가 겪은 일을 나는 알아. 잊은 적 없어”고 처절한 고백한다. 이 책은 위안부 피해라는 개인의 기억을 공동체적 기억으로 소환하는 역할을 한다. 할머니의 삶을 기억하고 우리 역사를 위해 정독할 가치가 있다.
이 책과 지난해 함께 나온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현대문학)도 김숨이 기록한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의 증언집이다.
최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만화 ‘내 어머니 이야기’(애니북스)는 역주행 중인 대표적인 어머니 서사다. 2014년 완간되었다가 절판된 이 책의 개정판은 마흔에 처음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김은성 작가가 어머니의 삶을 그린 것이다. 김 작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자 대단한 기억력의 소유자인 어머니의 얘기를 들을수록 어머니의 얘기도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장작 10년에 걸쳐 어머니의 얘기를 녹취해 만화로 그렸다. 80대 어머니와 40대 딸이 한국 근현대사 100년의 장면들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작업했다. 1부는 일제 강점기의 함경도 북청을 배경으로 유년 시절 어머니(아명 ‘놋새’)의 집안사가 그려진다. 2부는 어머니가 혼인한 뒤 겪는 광복, 6·25전쟁이 배경이다. 3부는 피난민 시절을 거쳐 충남 논산에 터를 잡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머니의 삶이 펼쳐진다. 4부는 1970년대 말 서울에 올라온 뒤의 가족사다. 만화를 보다 보면 내가 내 어머니와 연결돼 있고 개인의 역사의 우리 공동체의 역사로 수렴되는 것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남해의봄날)는 여든 앞에서 글과 그림을 배운 순천 할머니들의 그림일기 모음이다. 고단했던 하루하루를 힘껏 살아온 순천의 할머니 스무 명이 뒤늦게 글을 익히고 그림을 배워 지나온 인생을 담았다. 눈물과 웃음이 녹아있는 글과 명랑하고 순박한 그림 100여점을 모은 책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