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최근 국회 시정연설에서 북·일 국교 정상화를 언급하는 등 올해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의욕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남북, 북·미 대화가 본격화되자 남한과 미국을 통해 북한과의 대화를 시도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도리어 국면 전환을 내다보지 못하고 관성적으로 대북 강경 스탠스를 유지하다 ‘재팬 패싱’을 유발했다는 비판까지 받았다.
여기에 더해 레이더와 저공비행 갈등 때문에 한국과의 관계도 틀어졌다. 아베 정권은 한·일 갈등을 이용해 보수 여론을 결집하고 개헌 정당성 확보까지 노리고 있어 한·일 관계는 한동안 경색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에서 북·일 관계를 개선하고 ‘재팬 패싱’ 우려를 불식하려면 북한과의 직접 대화 채널을 여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
일본은 지난해 한반도 대화 국면에서 시종 한 발짝씩 뒤처지는 대응을 해왔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북한의 ‘매력 공세’에 대응하겠다며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함께 고압적 태도를 취해 외교적 결례 논란을 낳았다. 북한의 전략적 도발과 그에 따른 대북 초강경 제재가 이어진 2017년 상황이 반복될 것으로 판단한 탓이다. 남북 대(對) 미·일의 구도를 만들어 한·미 관계를 이간하려는 의도도 있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예상과 달리 평창 올림픽 이후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까지 성사되는 등 한반도 해빙 국면은 더욱 가속화됐다. 이를 간파하지 못했던 아베 총리는 결국 지난해 한반도 외교전에서 사실상 배제됐다. 아베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등 한·미 측 인사들과 만날 때마다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북한에 제기해달라고 부탁해왔다. 하지만 남북, 북·미 대화에서 일본 측 관심사항이 비중 있게 논의된 정황은 현재로선 보이지 않는다.
북한도 북·일 관계 개선에는 아직 별다른 관심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일본보다는 남북, 북·미, 북·중 관계 개선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 관영 매체는 북·일 국교 정상화를 언급한 아베 총리의 국회 시정연설 이후에도 노골적인 대일(對日) 비난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은 지난달 30일 논평에서 자위대 훈련을 비난하며 “해외팽창 야망에 들떠 분별없이 날뛴다면 차례질(돌아갈) 것은 오직 일본의 종국적인 파멸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북·일 관계의 ‘터닝 포인트’는 2월 말로 예정된 2차 북·미 정상회담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대북 제재 완화 합의가 이뤄진다면 일본 역시 대북 독자제재 해제를 걸고 북·일 대화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일본 독자제재 때문에 조총련 자금이 끊긴 북한은 일본과의 대화에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2004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2차 방북 이후 15년 만에 북·일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과 일본이 아베 총리가 공언한 대로 국교 정상화까지 이룰 수 있을지는 아직 회의적이다. 북·일 관계 최대 현안인 일본인 납북자 문제는 양측 간 팽팽한 평행선만 달리고 있다. 북·일은 2014년 5월 북한이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재조사하는 대가로 일본은 대북 제재 일부를 해제하는 ‘스톡홀름 합의’를 이끌어낸 바 있다. 하지만 합의사항 이행은 북한 측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지지부진했다. 게다가 2016년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실시하고 이에 일본 정부가 대북 추가 독자 제재를 시행하면서 합의문은 사실상 사문화되고 말았다.
아베 총리 입장에서 납북자 문제를 놔두고 북·일 관계 개선을 추진하기도 어렵다. 아베 총리는 2002년 관방 부장관 재임 시절 열렸던 1차 북·일 정상회담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일본인 납북자 관련 사과를 받아내는 데 공헌한 바 있다. 이 일이 일본 국내에 알려지면서 아베 총리는 ‘납치의 아베’라는 별명을 얻는 등 ‘스타 정치인’ 반열에 올랐다. 아베 총리가 2006년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최연소 총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납북자 문제 덕분이었다. 따라서 납북자 문제 진전 없이 북·일 관계 개선을 추진할 경우 아베 총리가 도리어 정치적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