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지난해 미국 중국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 세계 강대국들과 잇달아 충돌했다. 외교 마찰을 피하기는커녕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일에도 사사건건 간섭했다. 캐나다가 국제무대에서 좌충우돌한 데에는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외교부 장관의 영향이 컸다는 지적이 나온다.
프릴랜드 장관은 지난해 11월 합의된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협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미국에 불리하다고 문제를 제기해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유의 협상 방식으로 캐나다를 압박했다. 특히 자동차 관세로 캐나다 경제를 파멸시키겠다고 협박했다.
프릴랜드 장관은 지지 않고 반격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말한 것에 대해 “바보 같은 일이다. 미국의 가장 가깝고 강력한 동맹국인 캐나다인들에게는 모욕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한 나라의 외교부 장관에겐 어울리지 않는 직설적인 발언이었지만 그의 이러한 태도가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효과를 발휘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프릴랜드가 미국 무역협상단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탓에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협상 막바지에 “캐나다 외교 대표자가 싫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캐나다 일간 토론토스타는 평가했다.
프릴랜드는 캐나다 외교부 장관이 되기 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서 기자로 일할 때도 강건한 태도로 유명했다. 특히 1990년대 중반엔 FT의 러시아 모스크바 지부장으로 일하며 크림반도 병합 문제와 관련해 러시아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러시아는 결국 2014년에 그를 입국금지 대상에 올렸다.
프릴랜드는 외교부 장관에 임명된 후에도 직설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그를 전폭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캘리 나이트 크래프트 캐나다 주재 미국 대사는 “트뤼도와 프릴랜드는 서로 신뢰를 갖고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며 “덕분에 프릴랜드가 지치지도 않고 굳세게 외교 협상에 나설 수 있다”고 평가했다.
트뤼도 총리와 프릴랜드 장관의 주도하에 캐나다는 그 어느 때보다 국제사회 인권문제를 강조하고 있다. 프릴랜드 장관은 지난해 8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 인권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그는 여성 인권 운동을 하다가 사우디 정부에 체포된 사마르 바다위에 대해 트위터에 “바다위가 사우디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놀랐다. 캐나다는 이 어려운 시기에 바다위 가족과 함께하며 강력하게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고 썼다.
이 트위터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바다위는 사우디의 여성인권 운동가다. 그의 남동생의 아내가 캐나다 국적이긴 하지만 그 자신은 미국 국적만 취득했다. 그런데 미국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프릴랜드가 먼저 나서 사우디를 압박한 것이다.
사우디는 당장 캐나다가 내정간섭을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수도 리야드에서 캐나다 외교관을 추방했다. 이후 국영항공사의 토론토 직항편을 폐쇄하고 캐나다 내 사우디 유학생들을 복귀시키는 등 보복에 나섰다. 프릴랜드의 트위터 한 줄로 캐나다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캐나다와 프릴랜드는 여기에 굴하지 않았다. 최근 사우디 소녀 무함마드 알 쿠눈이 부모로부터 폭력과 살해 위협에 노출됐다며 조국을 탈출했다. 이때 알 쿠눈이 망명지로 택한 곳도 캐나다였다. 프릴랜드 장관은 토론토 국제공항으로 직접 나가 망명 신청 후 캐나다에 입국한 알 쿠눈을 마중했다.
하지만 캐나다 외교정책은 최근 시험대에 올랐다. 국제 이슈에 연달아 개입하면서 곤경에 빠지고 있다. 캐나다는 지난해 미국의 요청으로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을 체포했다. 멍 부회장이 대(對)이란 제재 등 국제법을 어겼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중국은 미국 대신 캐나다를 탓하며 캐나다인들을 연이어 억류·체포했다.
최근에는 베네수엘라 사태에도 휘말렸다. 베네수엘라 정치 위기 해결을 목표로 14개국이 참여한 ‘리마 그룹’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규탄하고 대신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지지했다. 하지만 미국이 군사력을 동원해 베네수엘라에 개입하는 것에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