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 미드필더 이청용(31·VfL보훔)은 지금 ‘사선’에 있다. 그를 향해 은퇴가 거론된다. 이청용은 아직 은퇴를 말한 적이 없다. 대표팀의 변화를 촉구하는 축구계 안팎의 목소리가 모인 결과다.
이청용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12 런던올림픽을 이끌었던 황금세대의 퇴장은 은근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올림픽 동메달을 이끌었던 기성용은 30일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이청용은 기성용과 함께 ‘쌍용’으로 불리며 함께 한국축구 역사상 한 시대를 풍미했던 중원의 핵이었다.
이청용은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 최종명단에서 탈락한 직후 어렵게 대표팀에 복귀했으나 벤투호 첫 국제대회에서 위기를 맞았다. 2019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시안컵 8강 탈락은 충격적이었다. 이청용은 지난 25일 카타르와의 경기서 0대 1로 패배한 직후 “베테랑 선수로서 팀을 잘 이끌지 못한 것에 대해 실망감을 느낀다”며 고개를 숙였다. 아시안컵 실패에서 비롯된 자책감과 최근 불고 있는 세대교체에 대한 광풍이 자의 반 타의 반 그의 은퇴 시기를 앞당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청용의 노련함은 아직 필요하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리더십을 발휘할 베테랑으로서의 존재감이다. 이청용마저 팀을 떠나게 되면 주장 손흥민을 비롯해 황의조, 이재성으로 이어지는 1992년생 선수들이 고참 역할을 맡게 된다. 그간 벤투호의 사실상 리더는 기성용이였다. 주장 완장을 손흥민에게 넘기긴 했지만 경기장 안에서 빌드업의 기점 역할을 하며 선수들을 이끌었다. 이번 아시안컵을 치르며 화제가 됐던 이승우의 ‘물병 차기 논란’에 “잘 타이르겠다”며 답한 것 역시 그였다. 그라운드의 안팎에서 팀을 책임졌다.
누군가 중심을 잡아줄 리더가 필요하다. 기성용의 뒤를 이어 이청용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음주, 흡연을 일절 금하며 훈련에만 매진하는 그의 성실성은 대표팀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기 충분하다. 대표팀에서 잔뼈가 굵은 오랜 경험은 그의 최고 장점이기도 하다.
이청용을 필요로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아직도 그의 전술적 효용도가 충분하다는 점이다. 이청용은 파울루 벤투 감독이 즐겨 쓰는 4-2-3-1 포메이션에서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다. 체력 누수에 대한 부담이 큰 손흥민을 대신해 왼쪽 측면 공격수로 나설 수 있으며, 중앙 미드필더와 우측 윙어 포지션 역시 소화할 수 있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상대 중앙 밀집 수비 뒷공간을 공략하지 못해 황의조가 고립된 것이었다.
최근 소속팀 보훔에서 보여줬듯 과거 전성기에 비해 신체적인 능력은 떨어졌을지언정 창의성만큼은 아직 녹슬지 않았다. 상대 최종 수비라인 상대 미드필더들의 1차 저지선 사이에서 횡으로 드리블하며 날카로운 패스를 찌르는 이청용의 장기는 벤투호 공격의 윤활유가 될 수 있다.
오랜 경험이 가져다주는 노련함은 오는 1일 아시안컵 결승을 앞둔 일본 대표팀 수비수 나가토모 유토를 보면 알 수 있다. 특유의 투지와 성실함을 바탕으로 후배 선수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백전노장의 경험치를 증명했다. 이청용보다 두 살 형인 나가토모는 2022 카타르 월드컵에도 나서겠다며 스스로 다짐하고 있다. 32세. 은퇴를 언급하긴 아직 이른 시기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