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가뒷談]‘모범적이지 않은 상사’ 공개로 고민하는 국토부 노조

입력 2019-02-03 05:01


국토교통부 노동조합이 매년 진행하는 ‘모범 리더’ 선정 투표결과를 공표할 때 ‘모범적이지 않은 간부(워스트 리더)’도 알리는 방안을 검토한다. 국토부는 그동안 ‘모범 리더’만 대외적으로 알려왔다. 내부적으로 ‘수평적 조직문화 만들기’라는 투표의 의미가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웃 부처인 기획재정부는 매년 말 ‘베스트 상사’와 ‘워스트 상사’를 뽑아 공개하고 있다.

3일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열린 ‘국토부 노사합동워크숍’에서 국토부 노조는 지난해 선정한 ‘모범 리더’ 시상식을 진행했다. 지난해 투표결과 모범 리더에는 하대성 국토정책관, 황성규 철도국장, 김선태 대전국토청장, 이정현 광주국토소장, 추철규 진주국토소장이 선정됐다. 워크숍에 참여하지 못한 김현미 장관이 축전 영상을 보내 시상자들을 축하했다고 한다.

국토부 노조는 지난해 12월 19~31일 2주 동안 부처 내부 인터넷망을 통해 설문조사로 모범 리더와 모범적이지 않은 리더를 뽑았다. 지난해까지 총 6번 진행된 행사다. 지난해에는 전체 국토부 직원의 62.6%(약 2600명)가 참여했다. 국토부 노조 관계자는 “부처 내에서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행사”라며 “간부 공무원에 대한 상향식 평가는 조직문화를 수평적으로 만들고 투명한 공직사회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투표가 ‘반쪽짜리’라는 지적이 국토부 내부에서 나온다. 국토부 노조는 모범 리더만 대외적으로 공표하고 ‘워스트 리더’는 따로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투표에서는 간부급 공무원들의 업무능력이나 의사소통 방식 등에 점수를 매기는데 하위권은 자연스럽게 워스트 리더가 된다. 국토부 노조 관계자는 “부정적인 결과는 개인 명예와 연결되기 때문에 보호하는 차원에서 워스트 리더를 따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국토부 노조는 워스트 리더 명단을 김 장관에게 보고했다. 인사고과에 직접 반영되지는 않지만 국토부 직원들이 평소 간부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하라는 의미다.

올해 투표는 달라질 전망이다. 국토부 노조는 올해 12월 진행될 투표부터는 워스트 리더도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부정적인 결과라도 워스트 리더가 스스로 행동을 고치도록 공개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다만 실명을 그대로 공개할지는 추후 논의를 통해 결정할 방침이다.

워스트 리더를 이미 공개하고 있는 부처도 있다. 기재부 노조는 지난 2004년부터 매년 말이 되면 과장급 미만 기재부 직원 600여명을 대상으로 '가장 닮고 싶은 상사'와 ‘가장 닮고 싶지 않은 상사’ 투표를 해 결과를 알리고 있다. 닮고 싶은 상사는 한 해 동안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인 간부인 반면 닮고 싶지 않은 상사는 함께 일하기 힘들거나 업무 효율이 떨어지는 간부다. 기재부 간부들 사이에선 가장 닮고 싶은 상사로 뽑히기보다 닮고 싶지 않은 상사로 선정되지 않기를 바라는 분위기다. 기재부 관계자는 “투표를 의식해 직원들에게 폭언이나 과도한 업무지시를 자제하는 간부들이 많아졌다. 투표가 나름대로 순기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투표가 사실상 ‘인기투표’에 불과해 공직사회의 상명하복 문화를 없애는 데 큰 도움이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워스트 간부의 경우 업무 능력보다는 개인적인 감정에 의해 뽑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 노조 관계자는 “워스트 간부를 공개해 단순 흥밋거리로 여겨지지 않도록 공개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