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화의 인저리타임] 거대해진 일본과 카타르, 한국축구가 그들을 보며

입력 2019-01-30 08:36 수정 2019-01-30 10:57
일본 선수단이 28일(한국시간) 2019 AFC 아시안컵 4강전 이란과의 경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화 뉴시스

2019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시안컵의 결승 대진표가 완성됐다. 이번 대회 최고의 ‘문어’로 활약 중인 사비 에르난데스의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일본과 카타르는 오는 1일(이하 한국시간) 아부다비에서 우승컵을 두고 피할 수 없는 한판 대결을 펼친다. 오는 6월 코파 아메리카(남미선수권대회)에 초청받은 두 팀이 약속이나 한 듯 나란히 결승에 올랐다.

아시아 축구의 전통 강호와 월드컵 개최에 힘입어 막대한 투자를 거듭한 신흥 강호 간의 대결이다. 일본은 아시안컵 역대 최다우승(5회)을 위해, 카타르는 사상 첫 우승을 위해 싸운다. 두 팀 모두 막강한 우승 후보였던 이란과 한국을 꺾고 올라온 만큼 자신감이 붙었다. 준결승전에서 각각 이란과 개최국 UAE를 맞아 3골과 4골을 퍼부었다.

일본과 카타르의 결승 진출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결승까지 단 한 번의 무승부조차 허락하지 않은 그들의 행보가 이를 증명한다. 특히 카타르의 경우 6경기를 치르며 단 한 골도 내주지 않았다.

전술적인 다변화 역시 눈여겨볼 만했다. 일본의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이란전에서 들고나온 공격적인 압박축구, 카타르의 펠릭스 산체스 감독이 보여준 한국전의 변칙적인 파이브백은 지금까지 그들이 했던 것과 전혀 다른 축구였다. 이는 감독 역량의 중요성을 언급함과 동시에 그들의 승리가 계획적인 이변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런 만큼 우승의 영광을 가져갈 자격은 두 팀 모두에게 있다.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시야를 아시아 무대로 국한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3년 후 월드컵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기 위해 어떤 단계적 절차를 밟았을까. 분명한 것은 이들의 행보에서 얻어지는 결과가 변혁의 시기를 맞게 된 벤투호에도 막대한 시사점을 줄 것이란 사실이다.

카타르 선수단이 29일(한국시간) 2019 AFC 아시안컵 4강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경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뉴시스

유럽파 vs 국내파

이번 결승은 전통 강호와 신흥 강호의 맞대결이라는 재미요소를 제외하고도 또 하나의 특이점을 가지고 있다. 대표팀 구성원 결성에 있어서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반대편 대진에 서서 마지막 결승까지 올라왔다.

“일본은 조별리그와 16강전 선수 구성이 90% 다를 정도로 선수층이 두껍고 안정적이다. 사우디전을 직접 봤는데 깜짝 놀랐다. 선수들의 소속팀이 대부분 유럽 명문 클럽이었다. 일본은 경험과 능력을 갖춘 선수들이 많다.”

일본과의 8강전을 앞두고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박 감독은 국내파가 대부분인 베트남과 분명한 격차가 있다며 일본이 전력상 훨씬 우위에 있음을 인정했다.

박 감독의 말 그대로다. 일본은 23인의 선수단 중 절반 이상인 12명이 유럽리그 소속이다. 하지메 감독의 베스트 라인업이라고 평가받는 4-4-2 포메이션 중 공격수 오사코 유야와 미나미노 타쿠미를 필두로 11명 전원이 유럽리그 소속이다. 독일과 벨기에 리그에서 2명씩, 잉글랜드·스페인·네덜란드·터키·포르투갈·오스트리아·프랑스 리그에서 1명씩 뛰고 있다. 지난해 월드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팀의 중심이 됐던 카가와 신지와 오카자키 신지, 이누이 다카시도 유럽리그 소속이었다.

일본 J리그 선수들은 유럽프로축구 진출에 유달리 적극적인 분위기가 형성돼있다. J리그 구단들 역시 이적료 등 눈앞의 이익에 가려 선수들의 유럽이적을 가로막지 않는다.

카타르는 정반대다. 23명의 선수 중 현역 유럽파는 스페인 3부리그 소속 칼레드 모하메드뿐. 나머지 22명은 전부 자국 리그 출신이다. 전력의 95%가 자국 리그 출신으로 구성됐다. 그런 만큼 서로가 서로에 대해 잘 안다. 벤투호의 경우 대회 직전부터 유럽파 선수들과 아시아권 선수들의 소집 시기 차이로 골머리를 앓은 바 있지만, 그와 같은 선수들의 소집 일정 문제도 없었다.

카타르는 월드컵 개최를 꿈꾸며 유소년 육성과 재능 있는 아프리카 선수들의 귀화 및 양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카타르 선수단을 살펴보면 아시아 혈통과는 거리가 먼 이들이 많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알모에즈 알리와 비삼 알라위 등 몇몇 선수들이 대회 도중 무자격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현역 유럽파는 단 한 명 뿐이지만 주축 상당수는 유럽 무대 유학경험이 있다. 29일 UAE를 상대로 득점포를 가동하며 아시안컵 역대 최다 득점 타이기록(8골)을 세운 특급 골잡이 알모에즈 알리는 벨기에 리그와 오스트리아의 린츠를 거치며 유럽 무대에서 성장기를 보낸 후 카타르 리그로 돌아왔다. 알라위 역시 스페인의 셀타비고와 벨기에 리그에서 몸담았던 이력이 있다. 이는 카타르가 국가적으로 축구선수 육성 재단을 건립해 유망주들의 유럽 유학을 돕고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3부 리그 구단 데포르티바 레오네사가 카타르 재단의 소유다.

아쉽게도 한국축구계는 카타르처럼 막대한 재력을 갖고 있지 않다. 국가 차원에서 어린 선수들에게 선진축구 유학을 경험시켜주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머나먼 안갯속 얘기다. 카타르에 참고할 점은 자국 리그 선수들에게도 대표팀 문턱을 넓힌다는 것이다.

이강인과 백승호가 좋은 예다. 최근 많은 미디어와 팬들이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에서 활약하고 있는 그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있다. 이들은 스페인에서 성장기를 보낸 만큼 탁월한 탈압박과 패싱력을 갖춰 벤투 감독이 요구하는 기술축구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차기 월드컵에서 주역이 될 여지가 충분한 선수들이다.

다만 스페인이라는 선진축구에 시야가 가려 특정 선수에게만 매몰되는 오류는 피해야 한다. 국내 K리그에 잠재된 흙 속의 진주를 놓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달 11일 울산 훈련에서 벤투 감독에게 직접 점검을 받았던 미드필더 한승규, 장윤호, 김준형 등 신예 선수들도 있다. 특히 한승규는 지난 시즌 K리그 영플레이어상을 받으며 전북 현대 중원의 엔진으로 활약했다. 성남의 김동현과 전남의 한찬희 역시 눈여겨 볼만하다.

과감한 유럽 무대 진출이라는 일본 대표팀의 정신과 카타르 대표팀 내 자국 리그 출신 선수들의 경쟁력 향상이라는 장점만을 부각해 따와야 한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이야기하자면 엘리트 중심에서 벗어나 다른 마이너들에게도 저변이 넓어져야 스포츠의 가치가 향상될 수 있다.

모리야스 하지메 일본 축구대표팀 감독. 뉴시스

그들의 단계적 성장

한국은 A대표팀과 연령별 대표팀을 철저히 분리하고 있다. U-17을 김정수 감독이, U-20을 정정용 감독이, U-23와 A대표팀을 각각 김학범 감독과 파울루 벤투 감독이 지휘한다. 반면 일본은 하지메 감독이 23세 이하 대표팀까지 전권을 쥐고 있다. 월드컵과 아시안컵, A매치와 같은 성인 무대뿐 아니라 오는 2020년 도쿄 올림픽까지 임기를 보장받았다. 오는 6월 코파 아메리카까지 하지메 감독 지휘 아래 나설 예정이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일본 선수단이 눈에 띄게 젊어진 것 역시 그러한 배경이 한몫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일본 대표팀의 평균 나이는 26.1세.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에 참가했던 나이지리아가 평균 나이 25.9세로 참가국 중 가장 젊은 팀이었는데, 일본 역시 이와 큰 차이가 없다. 이번 명단에 포함된 23명 중 절반에 가까운 11명이 25세 이하 선수들로 구성됐다. 지난해 월드컵에 나섰던 선수단과 비교하면 평균나이가 무려 2살 이상 줄어든 셈이다.

카타르의 산체스 감독도 신예 선수들과 함께 해왔다는 측면에서 하지메 감독과 다르지 않다. 이 점에서 일본과 카타르의 단계적 성장은 닮아있다.

카타르는 2022 월드컵 유치를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하며 경쟁력 강화에 힘썼지만 조급하게 진행하지 않았다. 산체스 감독은 카타르에서만 10년을 머무르며 순차적으로 팀을 만들었다. U-19 대표팀부터 시작해 U-23를 거쳐 지금의 A대표팀까지 단계적으로 올라온 인물이다. 바르셀로나 출신답게 짧은 패스 위주의 점유율 축구를 선호한다.

감독으로서는 자신이 잘 아는 선수를 선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A대표팀도 산체스 감독의 시작과 함께했던 U-19 출신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이번 아시안컵 득점왕을 예약한 알리도 2014 AFC U-19 챔피언십 우승 멤버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오랜 시간 단계적으로 발을 맞춰왔다는 것에 있다. 벤투 감독과 비슷한 시기에 부임한 하지메 감독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무려 3개의 국제 대회를 치른다. 이 중 지난해 참가한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이번 아시안컵 역시 최소 준우승을 확보했다. 오는 6월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경쟁력을 입증할 잠재력은 충분하다.

카타르는 금전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풍부한 친선대회를 추진하고 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한 달여에 걸쳐 스위스, 아이슬란드, 요르단, 키르기스스탄, 알제리, 이란 등과 맞대결을 벌이며 전술을 갈고 닦았다. 조별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킨 카타르의 상승세 비결은 치밀한 준비에 있었다. 그들 역시 일본과 함께 코파 아메리카에 초청을 받았다.

펠릭스 산체스 카타르 축구대표팀 감독이 29일(한국시간) 2019 AFC 아시안컵 4강전에서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을 꺾고 선수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AP뉴시스

일본과 카타르, 훌륭한 두 팀에 박수를

일본과 카타르의 단계적 성장을 보며 양국 축구협회의 이례적인 선택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첫 번째는 카타르축구협회의 산체스 감독 선택이다. 막대한 부를 가진 카타르 재단이 세계적인 이름난 명장을 데려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터. 게다가 월드컵 개최국이라는 프리미엄까지 있다.

하지만 카타르축구협회의 선택은 성인 무대 감독 경력이 전무한 산체스 감독이었다. 그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연령별 대표팀을 거치며 선수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이가 그였기 때문이다. 급성장하는 와중에도 단단한 철학을 입히고자 자신들의 축구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이에게 지휘봉을 맡긴 것이다.

두 번째는 A대표팀과 U-23 대표팀의 권한을 한 감독에게 통째로 준 일본축구협회(JFA)의 결정이다. 성인대표팀과 하위 연령팀을 같은 감독으로 임명한 일본축구협회의 결정은 매우 혁신적인 발상이었다. 이렇게 되면 U-23 대표팀과 A대표팀 간의 선수 차출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뿐더러 신예 선수들이 직접 훈련을 통해 2명의 감독에게 증명받아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 부상 위험성의 감소는 덤이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일본은 조직력 극대화라는 귀중한 알을 낳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23세의 나이 제한이 있는 올림픽의 경우 그 대회에 나갔던 선수들이 자연스레 다음 월드컵 주축으로 성장하게 된다. 대회 실패나 베테랑 노쇠화 등을 이유로 굳이 세대교체론을 주창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흐름이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아시안컵 이후 변화의 시기를 맞게 된 한국축구가 교보재로 삼기 매우 훌륭한 사례다.

이제 남은 것은 방관자의 관점에서 결승을 지켜보는 일뿐이다. 기자는 카타르의 우승을 응원하고 있다. 일본의 역사적 과오에서 비롯된 적개심이나 그들이 아시아 축구 라이벌이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우승컵 수집이 특기인 팀들을 꺾어 버리는 언더독을 보며 전복적 통쾌함에 빠지고 싶어서다. 지난해 월드컵에서 독일을 꺾었던 한국처럼, 2016년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들었던 레스터 시티와 같이 이번 아시안컵에선 카타르가 스포츠의 매혹을 재연해줬으면 좋겠다.

결승을 끝으로 벤투호가 훌륭한 대회를 치른 두 팀의 성장 방식을 보며 교훈점을 얻길 바란다.

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 전광판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송태화 기자가 함성소리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전하는 스포츠 연재입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