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결정적인 순간에 숨겨왔던 발톱을 드러냈다.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이끄는 일본 축구대표팀은 28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알아인 하자 빈 자예드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2019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이란을 3대 0으로 완파했다.
4강까지 올라오는 과정에서 단 한 골도 내주지 않으며 막강한 수비를 펼쳤던 이란은 일본에 무려 3골을 내주고 무너졌다. 승리의 열쇠는 하지메 감독의 전술적 ‘트릭’에 있었다. 그간 일본이 아시안컵에서 했던 축구와 전혀 다른 플레이를 펼치자 이란 선수단은 경기 초반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일본축구는 오랜 시간 이베리아반도의 스페인축구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다. 북유럽 스타일의 투쟁심 있는 축구는 신체 조건에서 강점을 띄지 않은 일본으로선 적합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짧은 패스를 바탕으로 오밀조밀하게 풀어가는 점유율 축구는 일본의 상징이 됐다. 신장과 힘을 갖춘 공격수가 드문 일본에서 롱볼보다 짧은 패스의 플레이는 자연스럽게 기본이 됐다.
아시안컵에선 달랐다. 자신만의 색깔을 버렸다. 이 경기 전까지 아시안컵에서 5전 전승을 거뒀으나 매 경기 1점 차의 신승이었다. 기존의 짧은 패스 중심의 축구가 아닌 수비적인 실리 축구를 구사했던 결과였다. 하지메 감독은 평소 즐겨 썼던 4-2-3-1 포메이션이 아닌 대신 4-4-2를 주로 들고 나왔고, 내려앉는 수비 지향적인 경기로 운영했다.
이란과의 경기에서도 일본이 최종 수비라인을 낮게 위치시켜 카운터를 노릴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하지메 감독은 모두의 예상을 깼다. 그간 아시안컵에서 자신들이 보여준 축구와 정반대 전략을 들고 나왔다. 라인을 잔뜩 끌어올려 중원에서 맞불을 놨다. 하지메 감독은 물러선 채 신체조건에서 훨씬 우위에 있는 이란 선수들에게 전방 압박을 당한다면 체력적으로 불리한 싸움을 할 것으로 판단했다.
결국 하지메 감독이 택한 최고의 수비는 공격이었다. 기존의 자신들이 하던 축구로 되돌아 왔다. 공격적인 압박으로 중원에서 볼을 차지했고 이란의 수비진을 압박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강한 상대를 만나 가장 높게 라인을 끌어 올려 강하게 몰아붙였다. 불안한 수비에 대한 우려를 손쉽게 씻어냈다.
이란은 이번 아시안컵에 나선 23명 선수단 중 19명이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에도 나섰던 선수들이다. 발을 맞춰왔던 시간만큼 전열을 가다듬는 시간도 빨랐다. 초반엔 흔들렸지만 이내 상당한 압박을 구사하며 흐름을 되찾아오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후반전이 되자 그들의 리듬은 완전히 깨졌다. 홀린 듯한 바보 같은 수비와 비디오판독(VAR) 페널티킥까지 겹쳐 자멸했다. 선제골을 내주자 심리적으로 흔들리며 완벽히 경기 페이스를 내주고 말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플레이가 거칠어지며 파울도 남발했다.
하지메 감독은 경기를 끝낸 뒤 “선수들의 투지와 용기 덕에 결승에 오를 수 있었다”며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이날만큼은 ‘여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이란의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의 머리 꼭대기에 있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