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형 SOC’로 전환한다더니… 총선 앞두고 결국 ‘토목 SOC’

입력 2019-01-29 15:51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을 발표하며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을 하겠다며 총사업비 24조1000억원 규모의 23개 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한다. 그러나 이날 공개한 예타면제 사업의 면면을 보면 대규모 토목공사식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은 지양하고 생활형 SOC 사업에 집중하겠다던 문재인정부의 정책 방향이 급선회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총선을 앞두고 지역표를 의식한 선심성 정책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29일 국무회의에서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 추진방안을 확정하고 예타면제 대상 사업을 의결, 신속하게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가재정법은 예산 낭비를 방지하고 재정운영의 효율성을 위해 총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이고 국민 세금이 300억원 이상 투입되는 사업은 타당성과 지역균형발전 효과 등을 검토하는 예타를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기업과 일자리, 연구개발(R&D) 투자가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성장격차가 확대되고 있어 지역의 성장발판 마련을 위해 전략적 투자에 나서기로 했다며 예타면제 사업을 선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또 취지에 맞게 국가균형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되 사업계획을 구체화해 신속 추진이 가능한 사업으로 선정했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한다는 점을 고려해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사업은 원칙적으로 제외했다.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대상 사업이 총 23개 사업·24조1000억원 규모로 결정됐다. 뉴시스

그러나 예타에서 면제된 사업의 대부분은 국토부 소관이다. 24조원 중 20조원 안팎의 토목 SOC다. 이중 지역산업을 뒷받침할 도로·철도 등 인프라 확충을 위한 예타면제 사업은 5조7000억원에 달한다.
석문산단 인입철도(9000억원), 대구산업선 철도(1조1000억원), 울산 외곽순환도로(1조원), 부산신항∼김해 고속도로(8000억원), 서남해안 관광도로(1조원), 영종∼신도 남북평화도로(1000억원), 새만금 국제공항(8000억원) 등이다.

전국 권역을 연결하는 광역 교통·물류망을 구축하겠다며 예타면제한 사업 규모도 10조9000억원이나 된다.
수도권과 경남북 내륙을 연결하는 김천∼거제 간 고속 간선철도인 남북내륙철도(4조7000억원), 호남선과 강원권을 연결하는 충북선 철도 고속화(1조5000억원), 세종∼청주 고속도로(8000억원), 제2경춘국도(9000억원), 평택∼오송 복복선화(3조1000억원) 등이 대상이다.

환경·의료·교통 등 지역주민의 삶의 질 제고를 위한 예타면제 사업 규모 역시 4조원이나 된다. 제주 공공하수처리시설 현대화(4000억원), 울산 산재전문공공병원(2000억원), 대전도시철도 2호선(7000억원), 도봉산 포천선(1조원), 동해선 단선 전철화(4000억원), 국도 위험 구간 개선(1조2000억원) 사업이 포함됐다.

유독 SOC 투자를 기피했던 문재인정부라는 점에서 정반대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정부는 올해 SOC 예산에 지난해보다 3조원 적은 19조원을 배정했고, 내년 예산안은 이보다 5000억원 더 줄어든 18조5000억원만 배정했다. 내년도 전체 예산을 10% 가까이 늘려 잡은 가운데서도 SOC 예산만 자진 삭감한 것이다.

이 같은 정책에 적극적으로 앞장선 건 대규모 SOC 사업을 벌이던 국토부다.
이른바 ‘생활형 SOC'를 내세웠다. 대규모 토목 공사 대신 문화·체육시설과 농어촌 생활 여건 개선, 도시재생사업 등 이른바 생활밀착형 건설 사업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체육센터, 과학관, 구도심 복합 커뮤니티 시설, 노후 산업단지 개선, 노후 공공임대주택 시설 개선, 미세 먼지 차단숲 조성, 태양광 사업, 수소차 충전소 설치 등에 총 9조3000억원 예산을 배정했다.

시민단체는 이날 정부 발표에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녹색교통운동은 “정부와 여당이 적폐라 규정하며 비판했던 이명박정부의 4대강 사업과 같은 규모”라며 “이번 예타 면제사업의 피해는 결국 국민들이 떠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환경정의도 “광역자치단체별로 하나씩 나눠먹기식 대규모 토목사업을 배분하는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둔 선심성 투자”라고 강조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