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암시한 기성용, 뒤이을 중원의 조율사는?

입력 2019-01-29 12:49
16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알 나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AFC 아시안컵 C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중국의 경기, 중국에 2:0으로 승리한 한국 김민재 등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벤투호의 당면 과제였던 2019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시안컵이 끝났다. 2004년 중국 대회 이후 15년 만에 8강 탈락. 받은 성적표는 초라했다. 이젠 실패를 딛고 최종 목적지인 3년 후 카타르 월드컵을 위한 변화를 준비할 차례다.

한국축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2002 한일월드컵 ‘히딩크 사단’ 중 가장 마지막까지 대표팀에 자리를 지켰던 선수는 박지성과 이영표였다. 그들은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팀의 16강 진출을 이끌고 이듬해 카타르 아시안컵을 마지막으로 대표팀을 떠났다. 이젠 기성용과 구자철이 그 전철을 밟고 있다.

대회가 끝난 후 가장 먼저 은퇴 의사를 밝힌 선수는 구자철이다. 탈락이 확정되자 “이번이 내 마지막 대회였다”며 “벤투 감독과 나의 마지막 아시안컵 참가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밝혔다. 이어 “벤투 감독이 마지막을 함께 하자고 권유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8년 전 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했던 구자철은 그렇게 대표팀에서 마지막을 알렸다.

불의의 부상으로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소속팀 뉴캐슬로 조기 복귀한 기성용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은퇴를 시사했다. 조기 복귀가 확정되던 지난 20일 자신의 SNS를 통해 “하나님 감사합니다. 마침내 끝났습니다”라고 짧은 게시글을 올렸다.

기성용은 당초 지난해 러시아월드컵 이후 대표팀 은퇴를 결심했으나 벤투 감독의 만류로 이번 아시안컵에 나섰다. 조만간 대표팀 거취와 관련된 자신의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공연하게 은퇴 의사를 밝혀왔던 만큼 대표팀을 떠날 가능성이 크다.

‘점유’와 ‘지배’는 벤투식 축구에서 핵심 키워드다. 후방부터 시작되는 짧은 패스를 통해 점유율을 가져올 것을 주문하는 벤투호에서 허리는 특히 중요하다. 넓은 시야와 정확한 킥력, 탁월한 키핑까지 볼 소유에 능한 선수가 중원에 서야 한다. 이번 아시안컵에선 공격이 전개되는 중앙으로 볼이 투입되지 못한 것이 고전을 면치 못한 이유였다. 상대 미드필더진들을 끌어내지 못하다 보니 공격이 측면으로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점에서 기성용의 대체자로 지목됐던 황인범은 최소한 이번 대회에서만큼은 합격점을 받기 어려웠다. 그의 무리한 공격 전개와 공을 소유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오히려 독이 됐다. 그의 공격적 재능은 분명하지만 이면의 수비적 위험성 역시 적잖았다. 황인범의 실수로 인한 리스크는 곧바로 뒤에 있는 정우영이 감당해야 했다. 이는 연쇄적으로 김영권, 김민재가 지키는 수비진용의 불안정성을 높였다.

벤투 감독은 기성용에 대해 가능한 한 오래 중심축으로 활용하고 싶단 의사를 밝혀왔으나 이번만큼은 고집을 꺾었다. 28일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하면서 “은퇴 의사를 확실히 밝힌다면 선수의 의사를 존중할 것이다.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축구대표팀 기성용이 2019 AFC 아시안컵 C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중국의 경기를 하루 앞둔 지난 15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알 나얀 스타디움에서 축구공을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공격과 전진에 비중을 두기보단 안정감을 바탕으로 한 수비적인 밸런스에 집중할 수 있는 선수. 황인범과는 다른 경기 리듬을 가진 선수가 필요하다. 최근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에서 데뷔전을 치른 이강인과 백승호가 추후 활약에 따라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스페인에서 성장기를 보낸 만큼 탁월한 탈압박과 패싱력을 갖춰 벤투 감독이 요구하는 기술축구에 적합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벤투 감독은 지난달 11일 울산 훈련에서 K리그에서 인상적인 선수들을 대거 불러들이며 직접 몸 상태를 살펴봤다. 기존 일정에서 소집 시기를 열흘가량이나 앞당겼을 정도로 흙 속의 진주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그때 당시 점검을 받았던 K리그 미드필더 한승규와 장윤호, 김준형 등 신형 엔진들 역시 기성용의 뒤를 이어 카타르에서 주역이 될 여지가 충분한 선수들이다.

다음 대표팀 소집 일정은 오는 3월. 그때쯤 기성용은 이미 대표팀을 떠나있을 가능성이 있다. 벤투 감독은 최대한 많은 경기, 최대한 많은 선수를 관찰하고 다음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짧고도 긴 40여일이 시작됐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