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주 “故김복동 할머니, 세상 모든 피해 여성의 깃발이었다”

입력 2019-01-29 09:11 수정 2019-01-2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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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를 연출한 변영주 감독이 28일 별세한 고(故) 김복동 할머니를 추모했다.

변 감독은 29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김 할머니의 흑백사진을 올리며 “김복동 할머니는 세상 모든 것을 수줍어하고, 실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조차 힘들어하던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세상에 스스로를 밝히고 전선의 앞줄에 힘겹게 섰습니다”라고 적었다.

변영주 감독 인스타그램 캡쳐

이어 “시간이 흐르고 그녀 곁엔 아프리카에서, 중동에서, 동유럽에서 그녀와 같은 고통을 겪은 동생들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한 걸음을 걷기로 결심하고 그녀는 세상 모든 피해 여성의 깃발이 되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애도했다.

변 감독은 위안부 피해를 다룬 다큐 ‘낮은 목소리’ 3부작을 제작했다. 특히 이 중 세 번째 편인 ‘낮은 목소리 3-숨결’은 부산국제영화제 운파상을 받았다. 1편과 2편은 나눔의 집이라는 공동체 공간을 무대로 피해 할머니들의 일상을 쫓아가며 상처와 치유에 관한 목소리를 끌어냈다. 3편에는 할머니들의 증언을 담았다. 다큐 속 할머니들은 그동안의 수치와 침묵의 세월을 딛고 하나둘씩 밖으로 나와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제작 무렵 변 감독은 5년 동안 할머니들과 고락을 함께했다. 그는 “처음에는 할머니들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가까이 했으나 이제는 할머니에게 너무 큰 도움을 받고 있다”며 “한 분씩 세상을 떠나도 남은 분들이 이에 굴하지 않고 다음 세대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변 감독은 2013년 9월 서울 광화문에서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법적 배상하라며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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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할머니는 28일 오후 10시41분쯤 향년 9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할머니는 2017년 대장암 판정을 받은 뒤 여러 차례 수술까지 받았지만 노화로 인한 합병증 탓에 끝내 숨을 거뒀다.

딸만 여섯인 집안에서 넷째 딸로 태어난 김 할머니는 만 14세가 되던 1940년 위안소로 끌려갔다. “딸을 내놓지 않으면 동네에서 살지 못하게 하겠다. 군복 만드는 공장으로 가야 한다”는 말에 놀라 집을 떠났다. 이후 중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지에서 참담한 세월을 보냈다.

김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수요 집회의 상징이었다. 1947년 귀국한 김 할머니는 1992년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신고 전화를 통해 피해 사실을 처음 고백했다. 이후 1993년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위안부 피해자로서는 처음으로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이후 미국과 일본, 유럽 등에서 증언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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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할머니는 2012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지원하는 ‘나비기금’을 만들었다. 2014년에는 전재산 5000만원을 기부해 재일조선고급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 25만엔씩을 지원하는 등 사회공헌활동에 앞장섰다. 지난해 9월엔 암 투병 중에도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요구하며 외교부 앞에 직접 나왔다. 이날 할머니는 “우리가 위로금 받으려 여태 싸운 줄 아느냐, 1000억을 줘도 못 받는다”고 외쳤다.

지난 2일 ‘공익사단법인 정’은 ‘제1회 바른 의인상’ 수상자로 선정한 김 할머니에게 상패를 수여했다. 이들은 “김복동 할머니는 한일 과거사에 대한 바른 역사관을 전파했다”고 전했다.

김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공식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이제 23명이 됐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