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캔 스피크’ 주인공 김복동 할머니 별세…이루지 못한 생전 소원은?

입력 2019-01-29 05:47 수정 2019-01-29 10:03
페이스북 캡처

“죽기 전에 일본 아베 총리의 진심 어린 사죄를 받고 싶다”고 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1년 여간의 암 투병 끝에 28일 결국 별세했다. 향년 93세다.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대표는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인권운동가 김복동 할머니께서 28일 오후 10시41분에 운명하셨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빈소는 연대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 1호실”이라며 “장례식은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시민장’으로 하며 조문은 29일 오전 11시부터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발인은 2월 1일이며 충남 천안 국립 망향의 동산에 안치될 예정이다. 1926년 3월 경남 양산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만 15세였던 1940년 일본에 잡혀가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일본군의 침략 경로를 따라 끌려 다니며 8년간 위안부 피해를 입었다.

2017년 개봉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실제 모델로 잘 알려진 김 할머니는 1992년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하며 여성 인권 운동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2년 8월 제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회의에서 위안부 피해 증언을 시작으로 199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해 전 세계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렸다.

2000년에는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에 원고로 참여해 실상을 문서로 증언하기도 했다. 김 할머니는 “나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지만 지금 세계 각지에서 우리처럼 전시 성폭력 피해를 입고 있는 여성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알고 있기에 그들을 돕고 싶다”며 전 세계 성폭력 피해자와 이재민, 전쟁 피해 아동 등을 돕는데 앞장서 왔다.

뿐만 아니라 2011년 3월엔 일본 동북부대지진 피해자 돕기 모금을 제안해 1호 기부를 했고 2012년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함께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나비기금’을 설립했다. 2015년 전쟁‧무력분쟁지역 아이들의 장학금으로 5000만원을 기부했으며 2017년 8월엔 사후 남은 모든 재산을 기부하기로 약정했다.

김 할머니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5월 국경없는 기자회와 프랑스 AFP통신으로부터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에 선정됐다.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2015년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도 수상했으며 지난해 연말엔 공익사단법인 ‘정’이 수영하는 바른의인상 첫 회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암 투병 중이었던 지난해 9월엔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공식 발표하자 “지금이라도 이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밝혔다. 김 할머니는 생전에 “죽기 전 일본 아베 총리의 진심 어린 사죄와 사과를 받고 싶다”고 줄곧 말했었지만 결국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윤 대표는 KBS를 통해 “28일 오후 5시쯤 스스로 눈을 뜨시고 말씀을 시작하셨다”며 “가까이 다가가서 들으니 ‘위안부 문제 끝까지 해달라’는 말씀과 ‘재일 조선학교 아이들 지원하는 것도 끝까지 좀 해달라’, 그리고 그 말씀 끝에 일본에 대한 분노를 강하게 표현하셨다"고 말했다.

“그 뒤에도 (김 할머니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면서 수많은 말씀을 굉장히 길게 하셨는데, 너무 기력이 쇠약해진 뒤라 말씀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고 한 윤 대표는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내어 놓고 가셨다. 시간마저도 저희 활동가들을 배려해 저희가 다 모인 가운데서 떠나셨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날 오전 7시30분에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모 할머니가 운명을 달리했다. 두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자는 23명으로 줄었다. 지난해 12월 5일 김순옥 할머니가 별세한 데 이어 지난달 14일 이귀녀 할머니도 뇌경색 등으로 세상을 떠났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