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명절이 되면 가족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만큼 갈등도 발생하기 쉽다. 갈등이 커져 가족 간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실제로 매년 명절 연휴 동안 가정폭력 신고가 증가하는 추세다. 이 기간 동안 평소보다 1.5배가량 많은 신고가 접수된다.
평소 신뢰할 수 있는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 간의 대화는 우울증 등 마음의 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마음의 의지가 돼야 할 가족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특히 부부간의 언어적, 신체적 충돌은 큰 충격일 수 있는데 부부간 폭력을 경험했을 때 여성의 정신건강이 더 취약해 우울 증상 위험이 2배나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설 연휴를 앞두고 부부간 스트레스가 높아질 수 있어 이에 대한 적절한 대비나 조치가 필요하다.
고려대의대 정신건강의학과 한창수, 한규만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가정에서 겪는 부부간 폭력이 우울 증상의 발현 가능성을 높인다. 특히 남성은 큰 영향이 없었지만 여성의 경우 그 위험이 약 2배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나 성별에 따른 큰 차이가 확인됐다.
연구팀은 한국복지패널조사의 빅데이터를 활용해 부부간 폭력이 우울 증상 발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위해 국내 성인 기혼남녀 9217명을 조사했다. 이들 중 전년도에 우울증상이 없다가 조사 시점에 우울 증상이 나타난 1003명을 분류해 조사했더니 신체적 폭력이나 위협을 일방적으로 당한 여성은 신체적 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여성에 비해 우울 증상 발생 위험이 1.96배 높았다.
또 양방향성 언어 폭력을 경험한 여성은, 언어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여성에 비해 우울 증상 발생 위험이 1.4배 높았다.
반면 남성의 경우에는 폭력의 언어나 피해 및 가해 경험이 우울 증상의 발생에 영향을 주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기분장애학회(ISAD) 공식 학술지(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 최신호에 발표됐다.
한규만 교수는 28일 "이번 연구 결과는 기혼 여성이 남성에 비해 언어적, 신체적 폭력으로 인한 우울 증상 발생 위험에서 더 높은 취약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말해준다"며 "특히 언어적 폭력의 경우, 배우자로부터 폭언을 당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폭언의 가해자가 되는 경험 역시 정신건강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60세 이상 고령, 저학력층, 낮은 소득 수준, 경제활동 여부, 만성질환, 과도한 음주, 가족 구성원 간 관계에서의 불만족, 아동 및 청소년기에 부모의 이혼이나 경제적 어려움 등 역경을 경험한 경우에 우울 증상 발생 위험이 올라갔다.
특히 여성의 경우 가족 구성원 간 대인관계 만족도가 낮을 때, 언어적 폭력 경험을 경험할 확률이 늘어나며 이것이 다시 우울 증상 발생을 높일 수 있다.
한창수 교수는 "기혼 여성에서 가족 구성원 간 대인관계의 불만족이 언어적 폭력의 위험을 증가시켜 다시 우울 증상 발생 위험을 올리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면서 "가까운 가족일수록 더 큰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아야 하며 서로 배려하는 것만으로도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특히 명절에는 과음으로 가족 간 예의를 잃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서로 간 대화에 매너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도록 하고 자신이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나 주제는 가능하면 언급하지 않는 게 도움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