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연합(EU)과 러시아·중국이 베네수엘라 사태로 26일(현지시간) 긴급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극명한 의견차를 보이며 정면충돌했다. 두 명의 대통령이 갈등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혼란상이 국제사회의 진영 대립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미국은 임시대통령을 자처한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을 지지해달라고 국제사회에 촉구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베네수엘라의 악몽을 끝내려면 모든 국가가 과이도 의장을 지지해야 한다”며 “자유의 힘에 찬성하지 않으면 마두로 정권의 대혼란과 함께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겨냥해 “지금 베네수엘라는 불법적인 마피아 국가로 전락됐다”고 비난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마두로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주재 미국 외교관들에게 72시간 안에 떠나라고 요구한 것에 대해서는 “국민을 보호하려는 미국의 의지를 시험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날 베네수엘라 외교부는 72시간의 시한을 30일 정도로 연장하기로 했다.
EU 주요국들도 미국의 의견에 힘을 보탰다. 앞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페트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마리티나 피에츠 독일 연방정부 대변인, 제러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은 베네수엘라가 8일 내로 대선 계획을 발표하지 않으면 과이도 국회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하겠다는 입장을 트위터나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바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과 EU의 처사가 베네수엘라에 대한 내정 간섭이라고 비판했다. 바실리 네벤쟈 유엔주재 러시아 대사는 “미국은 오랫동안 남미 국가의 내정에 간섭했다”며 “워싱턴은 남미를 뒷마당처럼 여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베네수엘라는 국제사회 평화나 안전에 어떠한 위협도 가하지 않았고, 그들의 문제는 안보리 의제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미국의 목적은 (베네수엘라에서) 쿠데타를 기획하는 것이다. 베네수엘라를 극심한 분쟁에 빠뜨리는 것에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말했다.
마자오쉬 유엔주재 중국 대사도 “이번 문제는 베네수엘라의 주권과 관련된 것”이라며 “안보리의 소관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베네수엘라 의회만을 민주주의 절차에 의해 선출된 기관으로 인정하겠다는 내용의 안보리 성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성명이 채택되면 국제사회는 사실상 과이도 국회의장을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하지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채택 가능성은 낮다.
미국이 요청한 이번 회의는 15개 안보리 이사국 중 정족수인 9개국이 찬성해 개최됐으며, 장장 5시간 동안 진행됐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