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는 손흥민을 활용할 줄 몰랐다

입력 2019-01-26 09:00
한국 축구대표팀 공격수 손흥민이 25일(현지시간) 2019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시안컵 8강전 카타르와의 경기에서 볼다툼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2019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시안컵은 지난해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이어 손흥민이 주장 완장을 찬 두 번째 대회였다. 손흥민은 우승으로 마무리했던 그때와 달리 예상치 못한 탈락을 받아들이고 일정보다 빠르게 런던행 비행기에 오르게 됐다. 한국에 일격을 가한 팀은 우승 후보로 꼽혔던 이란도 일본도, 디펜딩 챔피언 호주도 아닌 중동의 복병 카타르였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25일(이하 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의 자예드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카타르와 8강전에서 0대 1로 패하며 무릎을 꿇었다. 후반 33분 압델아지즈 하팀에 통한의 결승 골을 허용했다. 잔뜩 웅크려있다 위협적인 중거리 슛으로 승부를 보려 했던 카타르의 공격적 수가 제대로 통했다.

손흥민은 잠잠했다. 몸이 많이 무거워 보였다. 잔 실수도 잦았고, 손흥민의 패스 미스는 곧바로 뒤에 있는 미드필더 라인의 불안정성으로 이어졌다. 그가 돋보였던 장면은 단 한 번뿐이었다. 후반 26분, 상대 수비수들의 동선이 서로 엉키며 행운이 찾아왔을 때다. 기회를 잡은 손흥민은 곧바로 침착하게 슛을 때렸으나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의 슛은 조용히 상대 골키퍼 정면으로 향했다. 최근 토트넘에서 놀라운 활약을 보였던 손흥민의 슛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날 벤투 감독은 지난 두 경기와 달리 손흥민의 위치를 우측 측면으로 돌렸다. 직접득점을 노리기보단 동료들과 연계과정을 통해 수비적으로 나선 상대의 공간을 깨뜨리는 데 집중하도록 주문했다. 황희찬이 지난 22일 바레인과의 16강전(2 대 1승)에서 부상을 당한 데 따른 연쇄적인 결과였다.

전반전엔 카타르 수비지역 중심으로 볼이 거의 투입되지 않았다. 이날 카타르의 골망으로 향했던 한국의 유효 슛은 단 2개뿐. 원하고자 하는 공격이 전혀 되지 않았다. 결국 후반이 돼서야 상대 수비수들의 간격을 넓히기 위해 손흥민의 위치가 조금씩 이동될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도 답답한 공격 속에 무의미한 횡패스와 백패스만 반복하다 통한의 중거리 슛을 얻어맞고 패했다.

한국 축구대표팀 파울루 벤투 감독이 25일(현지시간) 2019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시안컵 8강전 카타르와의 경기에서 손흥민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뉴시스

벤투 감독의 지난 17일 중국전과 바레인전에선 ‘손흥민 시프트’를 가동했다. 그의 위치를 중앙으로 옮겨 사실상 프리롤 임무를 맡기는 것이다. 최전방에 선 황의조를 비롯해 이청용과 황희찬에게 조금이나마 자유를 주고자 했다. 손흥민의 위치를 중앙으로 옮기면 측면에 많은 공격 기회가 생겨날 것이란 계산이었다. 하지만 손흥민이 번뜩였던 경기는 최종 수비진용을 올려 맞섰던 중국전뿐이었다.

상대가 수비 간격을 촘촘히 유지해 공간을 주지 않다 보니 황의조와 함께 고립됐고, 폭발적인 스피드를 발휘할 여지는 없었다. 손흥민 개인적인 컨디션 난조 문제도 있었지만 중앙으로 볼이 전혀 투입되지 않았다. 벤투 감독에게 전술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이유다.

벤투 감독은 중국전을 앞두고 뒤늦게 팀에 합류한 손흥민을 두고 “차이를 만드는 선수”라고 찬사를 보낸 바 있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된 전술적 활용과 손흥민 개인의 컨디션 난조가 겹치며 이번 아시안컵은 서로에게 악몽으로 남게 됐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