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개성공단 기업인들이 시설 점검 목적으로 신청한 방북을 유보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측이 개성공단 정상화 신호탄으로 읽힐 수 있는 기업인 방북에 동의해주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계속될 비핵화 협상에서 개성공단 정상화 카드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유진 통일부 부대변인은 25일 정례브리핑에서 “개성공단 기업인 179명의 개성공단 방문 승인 신청과 관련, 북한 방문 승인에 필요한 제반 여건이 조성될 때까지 승인을 유보한다는 점을 통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통일부는 사전에 기업인들에게 유보 방침을 전했으며 이날 오후 공문을 보내 통지했다.
이 부대변인은 ‘제반 여건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엔 “관계부처 간 협의, 국제사회의 이해 과정뿐만 아니라 북한과도 구체적인 협의가 필요하다”며 “해당 여건들이 충족이 다 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답했다. 이 부대변인은 ‘미국과 충분히 공감대가 마련되지 않은 것이냐’는 질문엔 “협의가 진행 중인 사항이기 때문에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말을 아꼈다.
앞서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시설 점검을 위해 16일 하루 일정으로 방북하겠다는 신청서를 지난 9일 통일부에 제출한 바 있다. 통일부는 민원 처리 기한을 한 차례 연장하면서 방북 승인 여부를 검토해왔다.
때문에 미국이 개성공단 정상화의 시작으로 비칠 수 있는 기업인 방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까지는 대북 제재가 유지된다는 입장을 대외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개성공단 기업인 방북을 막으면서 북한의 비핵화를 압박하고, 완전한 비핵화 이전까지는 제재 완화가 쉽지 않다는 시그널을 주고 있다는 해석이다.
또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진행될 비핵화 협상에서 미국이 개성공단 정상화 카드를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시점의 기업인 방북에 더욱 신중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지금은 굉장히 중요한 시점으로 북·미 간 비핵화 실무회담이 처음 이뤄졌고, 이후 협상에서 개성공단 재개 문제는 중요한 의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은 개성공단 재개 카드로 최대한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내려고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기업인들이 지금 시점에서 방북한다면 개성공단 정상화가 기정사실화될 수 있기 때문에 미국 측에서 조금 더 시간을 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개성공단 정상화는 북한의 선제적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력한 카드로 꼽힌다. 북한으로부터 최대한의 비핵화 조치를 받아내기 위해 미국이 기업인 방북을 최대한 늦추는 식으로 개성공단의 가치를 높인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가지고 온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만났다. 직후 미국 백악관은 2월 말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개최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