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끝이 무뎌졌다. 2019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시안컵에 출전하는 23명의 정예요원 중 공격수(FW)로 이름을 올린 선수는 황의조와 지동원 단 두 명. 하지만 이들이 만들어낸 필드골은 현재까지 단 한 골이 전부다.
황의조는 침묵 속에도 활발하게 움직이며 득점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장기인 몇 차례 날카로운 침투로 여전히 상대 선수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 17일(이하 한국시간) 중국전에선 손흥민을 대신에 페널티킥을 깔끔하게 성공시키기도 했다. 중앙밀집 형태의 상대의 밀착 수비에 고전하는 와중에도 골대를 3번이나 때렸다. 여전히 벤투호가 가지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공격카드다.
이젠 지동원이 제 몫을 해줄 때다. 황의조는 지난 1일 사우디아라비아(0대 0무)와의 개막전 평가전부터 계속되는 강행군에 선발로 뛰어왔다. 22일 바레인전(2대 1승)에선 90분 정규시간 동안 승부를 보지 못하며 연장전까지 치러 체력이 더욱 극심하게 소모된 상태다. 이날 황의조는 득점이 필요했던 상황에서 풀타임 경기를 소화했다.
황의조의 가장 큰 장기는 적극적인 빈 공간 침투와 슛 찬스가 열리면 지체 없는 과감한 슛이다. 상대의 강력한 지역방어 속에서도 공간을 찾기 위해 쉴 새 없이 뛰어야 한다. 최전방 스트라이커임에도 불구하고 움직임을 많이 가져간다는 뜻이다. 지동원은 필리핀과 1차전에서 휴식을 취한 직후 키르기스스탄전 8분, 중국전 20분, 바레인전 40분 출전 시간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현재까지 지동원의 활약은 합격점을 주기엔 어렵다. 같은 패턴의 공격 루트에 적응한 상대에게서 공간을 찾지 못한다면 가장 먼저 꺼내 들어야 하는 카드가 지동원이다. 파울루 벤투 감독의 첫 번째 백업 요원이란 뜻이다. 공격 루트의 다변화를 위해서라도 그의 활약은 절실하다.
직접 슛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총 68분을 소화한 그가 시도한 슛은 중국전에서 보여준 단 1개. 그마저도 상대 수비수 블록에 차단당했다. 득점보다는 측면에서의 유기적인 움직임과 2선 공격수들과의 연계에 장점이 있다곤 하나 그것은 선발일 경우 얘기다. 선발 공격수와 교체 공격수가 가지고 있는 임무는 전혀 다르다. 교체 카드로서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특이점이 전혀 없다.
벤투 감독은 이번 아시안컵에서 장신 선수를 선발하지 않았다. 골키퍼를 제외한 필드 플레이어 중 중앙 수비수 김민재(190㎝)에 이은 장신의 선수는 바로 지동원(188㎝)이다. 황의조(184㎝)와 손흥민(183㎝), 황희찬(177㎝) 모두 그들의 머리를 겨냥하고 크로스를 올리기엔 효율성이 떨어진다. 부상으로 아쉽게 대회를 마감한 나상호(173㎝) 역시 단신 선수였다.
공격이 풀리지 않을 때 장신 공격수의 머리를 겨냥한 크로스 위주의 축구는 중요한 공격 옵션 중 하나다. 공간을 잘 찾아 들어가 머리에 정확하게 전달만 된다면 상대가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다. 상대에 따라 전술과 경기 운영이 달라져야 하는 만큼 장신 공격수의 머리를 겨냥해 득점을 노리는 것은 또 하나의 분명한 공격 루트다. 게다가 평균 신장이 비교적 작은 편에 속하는 아시아팀들을 상대론 이러한 장신 공격수들의 장점이 발휘될 여지는 충분하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장신 공격수를 뽑아들지 않음으로서 롱볼 크로스라는 전통적인 공격 루트를 포기했다.
지동원은 장신 공격수지만 장신 공격수가 아니다. 장신 공격수의 가장 큰 강점은 제공권 싸움에 이점에 있다는 것이지만 지동원은 높이 경쟁에서 큰 두각을 드러내는 스타일은 아니다. 반드시 한 골이 필요한 상황에서 지동원의 머리를 겨냥한 롱볼 축구는 적합지 않다.
한국을 상대하는 아시아팀들이 대체로 페널티박스 근처 중앙 수비에 우선적으로 집중하는 만큼 창끝은 측면으로 향한다. 지난 바레인전에서만 35개의 크로스가 시도됐지만, 동료의 머리로 전달된 것은 단 2개였다. 무의미한 크로스 반복은 상대에게 공격권을 넘겨줄 뿐이다.
풀백들의 정확도를 바탕으로 크로스의 질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제공권 싸움을 해줄 수 있는 공격수가 없다. 크로스가 전달될 수 있는 정확한 타깃과 중앙에서 높이 싸움을 해줄 수 있는 선수도 필요하다. 벤투호에서 장신공격수의 향수가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래서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