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홈피엔 ‘의료비 불가’… 그랜드캐니언 추락 유학생 어쩌나

입력 2019-01-24 10:48 수정 2019-01-24 10:58
그랜드캐니언(그랜드캐년)에서 추락해 중태에 빠진 한국인 유학생의 귀국을 우리 정부는 과연 어디까지 도울 수 있을까.

사고 장면을 담은 영상. 유튜브 영상 캡처

외교부가 공개한 영사조력범위에 따르면 한국인 유학생의 의료비 대납은 물론 의료비 교섭조차 정부가 돕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외교부는 사실 관계를 파악한 뒤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24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사고가 어떻지 발생했는지, 피해 가족이 주장하는 병원비와 이송비가 정확한지 등에 대해 사실 확인 중”이라면서 “사고 경위 등이 명확하게 파악되면 병원비나 이송비 등 우리가 무엇을 어느 선까지 도울 수 있는지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외교부가 그동안 내부 지침으로 운영해온 ‘영사조력 범위’를 보면 한국인 유학생은 의료비나 이송비 등에 도움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영사조력 범위는 해외안전여행(www.0404.go.kr) 사이트에 공개돼 있다.

외교부의 해외안전여행 사이트에 게시된 영사조력 범위. 영사는 의료비를 지불하거나 병원과 의료비 교섭을 도울 수 없다고 돼있다. 해외안전여행 사이트 캡처

외교부나 현지 재외공관(대사관, 총영사관)은 긴급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현지 경찰에 신고하는 방법이나 의료기관을 안내하거나 현지 사법체계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또 예기치 못한 사고로 피해를 봤다면 영사는 우리 국민의 안전을 확인하고 피해자 보호를 지원한다.

피해자 보호를 지원한다고 돼있지만 그 범위는 제한적이다.

사이트에는 영사가 의료비나 변호사비 등 비용을 지불하거나 금전 대부, 지불 보증, 벌금 대납 등을 해줄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또 숙소나 항공권의 예약을 대행하거나 통·번역 업무를 수행하거나 범죄수사 및 범인 체포 등을 도울 수 없다. 심지어 우리 정부가 앞장서 현지 병원과 의료비를 교섭할 수 없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일부 네티즌은 지난 15일 제정된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영사조력법(이하 영사조력법)’에 따라 한국인 유학생을 지원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영사조력법 3장 10조(영사조력의 기본원칙)를 보면 사건·사고를 당한 재외국민은 스스로 또는 연고자의 지원을 받거나 주재국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경우 영사조력을 제공받을 수 있다.

지난 15일 제정된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영사조력법’ 제3장 10조를 보면 사건·사고를 당한 재외국민은 스스로 또는 연고자의 지원을 받거나 주재국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경우 영사조력을 제공받을 수 있다. 국가법령정보센터 캡처

하지만 이 법은 2021년 1월 16일 이후에야 시행된다. 외교부 관계자는 “영사조력법은 아직 시행 전인만큼 이 법을 적용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의료비를 대납해줄 수 없지만 국내 이송 비용은 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허윤 변호사는 “수익자 부담의 원칙과 국내 거주 국민 형평성 차원에서 정부가 직접지원을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면서 “다만 미국 의료비는 협상을 통해 크게 낮출수 있고 변호사 등 전문가를 섭외하는 책무는 정부의 국민보호대책 범위 안에 있으므로 이 부분은 당연히 해줄 수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동아대 수학과 재학생 박준혁(25)씨는 지난해 12월 30일 미국의 유명 관광지인 그랜드캐니언에서 실족해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1년간의 캐나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 전 관광을 떠났다가 변을 당했다. 박씨는 헬기로 구조돼 병원에 후송됐지만 뇌출혈과 복합 골절 등의 부상으로 중태에 빠졌다. 박씨 가족은 병원치료비 10억원 국내 이송비 2억원 등이 필요하다며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청원을 지난 17일 게시했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