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청와대 참모진 교체의 핵심은 대통령 비서실장의 교체다. 이는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시사하고 있다. 개혁성의 보강이자 청와대 내 기강잡기, 문재인 대통령 업무의 역할 분담의 성격이 있다. 그리고 개혁 속도전을 요구하는 핵심 지지층과 청와대 외곽 참모진의 요구가 영향을 끼친 부분이 있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도,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도 “대통령은 변하지 않았다”며 잇달아 대통령의 초심을 강조한 배경 역시 여기에 있다.
“대통령은 변하지 않았다”
임 전 실장은 지난 8일 노 신임 비서실장 임명 기자회견에서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임 전 실장은 “대통령의 초심에 대해서 꼭 한번 말씀드리고 싶었다”며 “문재인정부가 국민의 기대 수준만큼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개월 동안 대통령의 초심은 흔들린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재인정부가 탄생한 이후 당신에게 주어진 소명과 책임을 한순간도 놓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 안타까웠던 적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잘못을 했어도 내가 했다’는, 문재인정부 초대 비서실장의 마지막 소회 정도로 여겨졌다.
그런데 비슷한 발언이 열흘쯤 뒤 다시 고위직 참모 입에서 나왔다. 이번엔 김수현 실장이었다. 김 실장은 지난 20일 2기 참모진 개편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다시 마무리 발언을 자청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 대통령이 달라진 거 아니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적 포용국가 등 문재인정부의 융합적 경제·사회 정책을 설명한 뒤였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어떻게 달라졌다는 거냐. 저는 ‘원래 그런 분이었다’고 말하고 있다”며 “다만 상황에 따라서, 지금은 경제 활력을 강조할 때이기 때문에 경제 행보가 도드라지게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소득주도성장 보다 혁신성장에 방점을 찍고, 경제 개혁 대신 수구 경제 논리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갖고 있는 사회 여론주도층 지지 세력에게 던지는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은 마음이 불편하다
이같은 발언들은 몇 가지 배경이 있다. 우선 문재인정부 탄생 배경 중 하나인 시민사회계와 학계에서는 초기 2년 행보에 불만이 있었다. 지난 대선 문 대통령을 도왔던 참모 그룹에는 의원들과 학계, 시민사회계, 직능단체인, 전직 고위공직자 등이 속해있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 3.53% 포인트차 득표율(51.55% 대 48.02%)로 문 대통령이 패배했던 만큼 19대 대선은 그야말로 가용 자원이 총출동됐다. 재수회(대선 재수를 의미), 심천회(학계 싱크탱크) 등 참모 그룹과 정무적 준비를 하고 있었던 ‘광흥창팀’ 등이 활동했다. 일부는 더불어포럼 등 대선 직능단체 지지모임으로 발전했고, 일부 의원들은 더불어민주당 지도층으로 진입했다.
문제는 2년 개혁 성과가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외곽 참모 A씨는 지난해 한 의원에게 “지지율이 높을 때 개혁을 밀어붙여야 한다”고 토로했다.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이 50%를 상회하던 시절이었다. 청와대는 오히려 최저임금 정책 속도 조절에 나섰다. “청와대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이 문제”라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은·산분리 완화 등 지지층 반대 정책을 강행하는 데 대한 우려도 커졌다.
일부는 대통령에게 직·간접적으로 이같은 의견을 전달했지만 대통령은 상당히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고 한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경제적 부담도 있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대화 시도, 막대한 재정 투입 등 보수진영의 반대를 무릅쓰고 속도를 내고 있는데도 너무 재촉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신 인사가 단행됐고, 노영민 실장이 등장했다.
노영민 비서실장
노 비서실장은 지난 대선에서 조직을 담당했지만 외곽 그룹도 전체적으로 조율하던 인사다. 임 전 비서실장이 신(新) 친문이라면 그는 ‘뼈문(뼛속까지 친문)’이다. 그는 18대·19대 대선에서 활동했던 그룹들과 운명공동체다.
그의 등장은 김동연·장하성 갈등도 한 몫을 했다. ‘대한민국 인재등용’을 기치로 내걸고 영입됐지만 캠프 활동 없이 전권을 쥐여줬더니 정책 노선을 두고 갈등만 벌어졌다. 청와대는 “토론은 좋은 것”이라며 옹호했지만 결국 동시에 둘을 교체했다. 집권 1년차 황금기를 허송세월했다는 자성이 있었다.
운명공동체인 노 실장의 등장은 앞으로 좌고우면하지 않겠다는 뜻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문 대통령이 마냥 외곽그룹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것은 아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말 지인 B씨를 초청하는 등 관저에서 지인들과 종종 식사하지만 몇몇 중역의 인사(人事) 조치 건의에 대해서는 흘려듣고 말았다.
노 실장은 문 대통령 대면 보고 감축 등 직보(直報) 총량을 줄이도록 했다.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마음을 털어놓은 사람이 많지 않다. 가끔 그들과 저녁이라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비워주는 게 필요하다는 건의가 여럿 있었다”고 말했다.
2기 청와대의 과제
청와대는 지난 2년간의 피로감이 쌓인 듯 내부적으로 다소 시끄러운 상황이다. 청와대에 들어온 지 몇 개월 안 된 인사들이 사표를 내거나 전보됐고, 일부에선 업무 분장을 두고 잡음도 새어 나오고 있다. 공석이 오래가고, 돌발 사고가 터지면서 청와대는 1년 내내 인사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 실장은 우선적으로 조직 추스르기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경제 행보에도 힘을 싣고 있다. 기업인들과의 만남도 재촉하고 있고, 경제 지표에 대해서도 보고를 자주 받는다고 한다. 아무래도 경제 행보를 할 시간은 1분기 외에는 마땅치 않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한을 비롯해 이르면 3월부터는 외교안보 일정이 시작되고, 하반기에는 다자 정상외교가 즐비하다. 다른 관계자는 “1분기는 청와대가 경제에 ‘올인’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줄 수 있는 일종의 골든 타임”이라며 “혁신성장뿐 아니라 공정경제, 소득주도성장 등 핵심 경제정책에 관한 일정들이 준비되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경제에 신경을 쓴다는 신호를 집중 전파해, 심리가 좌우하는 경제에 온기를 전달하겠다는 취지다.
운명공동체인 노 실장의 등장으로 개혁 진영의 우려가 잦아들지도 주목된다. 민주노총의 비협조, 경제·산업계의 어려움 등 장애물이 산적해 있다. 노 실장의 정무적 판단에 따라 부침을 겪을 전망이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