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성폭력 당해도 신고 못 한 까닭… ‘부당한 영향 두려워’

입력 2019-01-23 13:41
기사 내용과 무관. 게티이미지뱅크

의과대학에 다니는 여학생 10명 중 7명이 학교나 실습기관에서 성차별적 발언을 들은 적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또 10명 중 4명은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와 인권의학연구소는 23일 ‘의과대학 학생들의 인권 상황 실태 조사’를 공동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의과대학과 의학전문대학원에 다니는 여학생 중 72.8%가 학교나 실습을 나간 병원 등에서 교수·레지던트·인턴 등에게 성차별적 발언을 들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성별로 인해 전공, 업무 선택에 제한과 차별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한 여학생도 58.7%나 됐다. 같은 답변을 한 남학생은 17.7%에 불과했다.

이번 실태 조사는 인권위가 2017년 부산대학교병원 전공의 폭행 사건에 대해 직권 조사한 것을 계기로 진행됐다. 설문 조사에는 전국 40개 의과대학과 의학전문대학원 학생 1763명(남학생 1017명, 여학생 743명)이 참여했다. 조사는 온라인 설문 방식으로 진행됐다.

성폭력 관련 문항도 설문에 포함됐다. 여학생 중 37.4%는 언어적 성희롱을, 18.3%는 신체적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시각적 성희롱에 노출된 적이 있다고 밝힌 학생은 17.1%였다.

성차별·성폭력 외에 각종 폭력도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의 49.5%가 언어폭력을 경험했다고 밝혔고, 60%가 회식 참석을 강요당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이밖에도 음주 강요(47%), 단체 기합(16%), 신체적 폭력(6.8%) 순으로 응답했다.

주요 가해자로는 교수가 지목됐다. 병원 실습 현장에서는 레지던트·인턴 등에게 피해를 겪은 경우가 많았다. 피해 사실을 대학이나 병원에 알린 경우는 3.7%에 불과했고, 대부분 신고하더라도 결과에 만족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고 ▲처리 경과에 대해 보고받지 못했거나 ▲학교 당국과 다른 학생들이 가해자를 두둔하는 등 2차 가해와 보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신고하지 않은 이유로는 ‘신고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42.6%)’ ‘그 문제가 공정하게 다뤄지지 않을 것(31.9%)’ ‘신고하면 자신에게 부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 두려워서(약 25%)’라고 답변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뉴시스